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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천희 May 04. 2020

아버지의 클라리넷

늦게 알게 된 클라리넷의 매력

5월 연휴를 맞이하여 고향 부산에 다녀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께 꽃을 선물해드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걸 깨닫게 된 것은 연애를 하고 나서부터이다. 여자 친구에게 꽃을 선물하면서, 선물 받으면서, 꽃이란 선물이 얼마나 좋은 건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연휴 때 어버이날도 기념하고, 아버지의 퇴사도 기념하여 꽃을 사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근처에 꽃집이 하나 있었다. 들어가려고 고민하는데 살짝 고민이 들었다. 부모님께 한 번도 꽃 선물을 해본 적이 없어서 부끄러웠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고 마음도 먹었으니 사가기로 했다. (안 샀으면 후회할 뻔)


꽃집의 문을 열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안에서 사장님이 나를 보시더니 문 안에서 얘기를 하셨는데, 문이 닫혀있어서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보시는 것 같아 꽃을 사러 왔다고 했다. 사장님께서는 살짝 미소를 지으셨다. 가게의 잠긴 문을 열어주셨다.


여자 친구에게 주는 꽃이냐고 물어보셨고, 부모님께 드리는 꽃이라 말했다. 그러니 카네이션을 좀 넣어 주겠다고 하셨다. 얼마짜리 꽃을 원하냐고 하셔서 3만 원 정도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사장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꽃을 꺼내고, 가위로 자르시고, 꽃다발을 만드셨다. 가게에는 주 50 시간에 대한 토론을 하는 티비 프로가 나오고 있었다.


꽃을 받는데 3만 원 치고는 크기가 굉장히 컸다. 같은 가격대의 꽃을 서울에서 샀을 때는 양이 적었다. 부산이 서울보다 물가가 싼 걸까?

사장님께 꽃이 예쁘다고 말했다. (이런 것도 어릴 땐 하지 않았는데 연애를 하면서 배운 표현이다. 이 말을 하는데도 사실 부끄러웠다.) 그러면서 어떤 게 카네이션인지, 꽃을 보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봤다.


집에 도착하여 어머니께 꽃을 드리니 환하게 웃으셨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셨다.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꽃병에 꽃들을 옮기려고 하니 꽃다발의 모습을 못 보게 되어 아쉬워하셨다. 꽃병에 물을 채우고 꽃들을 꽂으셨다. 꽃들의 높이를 맞추기 위해 뿌리 부분을 잘라서 맞추셨다.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살아생전 최초로 부모님께 요리를 해드렸다. (그동안은 왜 한 번도 안 했을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중 요리를 대접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연애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된 일이다.) 백종원 씨의 유튜브에서 돼지 갈비탕을 해봤는데 정성도 많이 들어가고, 맛있고, 크게 어렵지 않아서 부모님께 한 번 해드리고 싶었다. 국물을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좋아하실 것 같았다.


집에서는 어머니께서 요리를 안 하신 지 오래되어 재료가 없었다. 쪽파와 마늘, 굴 소스, 돼지갈비를 마트에서 사 왔다. 끓이다가 한 눈 팔고 국이 넘치긴 했지만 무사히 요리를 완성했다. 와인과 함께 돼지 갈비탕을 먹었다. 어머니께서 "살다 보니 천희한테서 요리도 대접받네."라고 얘기하셨다. 뿌듯하면서도 부끄러웠다. 다음에 부산 내려갈 땐 또 다른 요리를 해드려야지.


https://www.youtube.com/watch?v=JHKFiFJEMPw

돼지 갈비탕의 레시피는 이 영상을 보고 했다. 대충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음식인데 오래 걸릴 뿐이지 별로 어렵지 않다. 동남아 지역에서 바쿠테라고 불리는 음식을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국물은 쌀국수와 우육면 중간 정도의 느낌이다. 해장이 되는 시원한 국물 맛이 좋다. 갈비뼈에 붙은 살이 쫄깃해서 맛있다.


이번에 부산에 내려가면 어렸을 때 배웠던 클라리넷 악기를 가지고 오자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피아노를 배웠는데 4학년 때부터 클라리넷을 배우기 시작했다. 왜 배우게 된 건지 기억은 안 나지만 짐작이 가는 곳이 있다. 아버지가 클라리넷을 좋아하셨고,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계셨기 때문에 나에게도 클라리넷을 배우게 하신 것 같다. (방금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피아노를 치다가 재미없어 하는 것 같아서 클라리넷을 시켰다고 하신다.) 물론 그땐 피아노도 클라리넷도 음악 자체에도 관심이 없었다. 재밌진 않았는데 싫지도 않았고 그냥 학원을 계속 다녔다.

나도 학교의 기악부에 들어가서 클라리넷을 연주했었는데, 클라리넷은 나에게 심심하게 느껴졌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솔로 연주를 하면서 돋보이는 악기들이 더 멋있어 보였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된 이후에 재즈를 알게 되면서 클라리넷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Benny Goodman의 클라리넷 연주를 들어보니 클라리넷으로도 멋있는 솔로 연주가 가능했다. 나는 신나는 음악을 좋아해 Benny Goodman이나 Glenn Miller의 스윙 재즈를 열심히 들었다.

(Benny Goodman의 Sing, Sing, Sing : https://www.youtube.com/watch?v=r2S1I_ien6A

Benny Goodman 인기 곡 앨범 : https://www.youtube.com/watch?v=15ybEpHOZMs&t=83s

Glen Miller의 In The Mood : https://www.youtube.com/watch?v=_CI-0E_jses)


집에서 오랜만에 클라리넷을 연주해 보았다. 소리는 그래도 나긴 했는데 호흡이 딸려서 힘들었다. 어머니는 들으시고 "천희 연주 잘하는데?" 하셔서 우쭐해졌는데 아버지가 오랜만에 불어서 소리가 비어있다고 혹평(?) 하셨다. 클라리넷을 불어보니 알게 된 것이 이제 악보 없이 악기를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생각이 가는 대로 멜로디를 만들어서 불 수 있다. 메이저 스케일도 해보고, 마이커 스케일도 해보고, 펜타토닉도 해보니 제법 재미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 쓰던 악기를 가져가려 했는데 아버지가 자신이 안 쓰는 남는 악기가 있다고 하시면서 좋은 악기를 주셨다. 감사합니다 잘 써야지. 그런데 불어보니 악기가 꽤 시끄럽다. 서울엔 자취방인데 연주할 수 있을는지. 주말 낮에만 해보고 정 안되면 야외나 학교 운동장, 한강 공원 같은 데 가서 불러야 할 것 같다. 클라리넷으로 작곡도 해보고 싶고, 내 노래에 솔로 연주로 녹음해보고 싶고, 유튜브 영상도 만들어보고 싶다. 내일 낮에 한번 불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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