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과 의자
"내 집을 찾아서" 다녔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이사를 오기 전에 나는 두 집을 고민하고 있었다. A 집은 지하철과의 거리가 6분이라서 좋고, 지하철도 지선이라 사람이 적어서 출퇴근하기 편하다. 하지만 집 크기가 약간 작다. B 집은 지하철과의 거리는 10분으로 약간 더 멀고, 출퇴근 시 사람이 좀 더 많다. 하지만 집 크기가 A집보다 크고 집의 시설(큰 장롱과 신발장이 있었다)도 더 좋았다.
A 집은 대학교 근처의 집이고 마침 내가 이사하려는 시즌이 대학생들이 입학하는 시기라 입학 일정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때 금요일이 대학교 정시 발표 날이라서 금요일까지는 시간이 좀 있겠지 생각하였다. 그래서 수요일쯤에 최종 결정을 해서 연락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 이주일 동안 힘들게 고민하다가 결정하여 수요일에 중개인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방 아직 남아있나요?"
대답은 청천벽력 같았다. 방이 벌써 나갔다는 것이었다. 정시가 발표되기 전 수시 발표가 나자 발 빠른 학생과 학부모가 집을 이미 구한 모양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고민했는데 집이 나가버리다니.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그 집은 내가 계약하기 직전까지 갔던 집이었다는 것이다. 그 집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다음날 집주인과 계약하기로 약속을 잡고 회사 후배에게 가계약할 때 주의할 게 있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회사 후배님이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방 안 나갈 거니까 더 고민해보시죠."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 집이 크기가 작은 게 약간 마음에 걸렸어서 집주인과의 약속을 취소했다. 하지만 이제 그 집은 내 손에서 떠나버렸다. 머릿속에서는 '그때 계약 취소 안 하고 해 버릴걸' 하는 생각이 계속 나면서 너무 우울했다.
힘든 마음을 달래고 고민하던 B집을 하기로 마음먹고 부동산 중개인에게 전화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원하는 이사 날짜에 계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전에 방을 보러 갔을 땐 분명히 그 날짜에 된다고 했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날짜를 착각했었나?
그때의 충격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컸다. 나는 두 집을 2주 동안 다른 일은 손에 잡지도 못하고 심하게 고민을 했었다. 그렇게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이 완전 헛수고였던 것이다. 어차피 B집이 안 되는 거였으면 아무 고민 없이 A집을 했으면 되는 거였는데.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마음에 들었던 두 집을 다 놓쳐버렸다.
부동산 중개인은 혹시 이사가 될 수도 있다며 오후에 다시 연락을 준다고 그랬다. 하지만 이사가 안될 수도 있고 내가 사는 집의 계약 만기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새로운 집을 보러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지겹게 집을 보러 다녔는데 또 집을 봐야 한다니 정말 신물이 났다. 마음에 드는 집은 잘 나오지 않고, 장사꾼 같은 부동산 중개인들은 피곤하고.
오전에 한 집을 보고 부동산 중개인의 '이 집 오늘 보고 가신 분이 마음에 들어하시더라고요. 빨리 선택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는 중개인 단골 멘트를 또 들었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부동산 어플로 집을 찾다가 다른 집을 보러 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동산 중개인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알아보니 이사가 가능하단다. 알겠다고 그랬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동안 내가 했던 고민이 헛수고였구나'라는 우울한 기분이 들게 한 중개인에게 화가 났다. 그래서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내 사정을 말하면서 화를 냈다. 그러자 중개인이 집이 잘 안 나가서 이사 날짜를 연장하다 보니 혼선이 있었다고 그랬다. 이것도 나를 애닳게 하려고 하는 장사 속셈은 아니었겠지. 뭐 여하튼 그 이후론 순조롭게 진행되어 계약도 하고, B집으로 이사도 와서 살게 되었다.
이사온지 3주가 다 되어가면서 드는 생각은 처음에 가려고 했던 A집을 안 가게 된 것이 너무 다행인 것이다. A집과 B집의 면적은 큰 차이는 나지 않았지만 (1.5평 정도) 그래도 조금이라도 큰 집에서 사는 게 더 나에게 더 좋은 것 같다. 그리고 B집에 오게 된 것이 너무 마음에 드는 생각의 하이라이트를 찍은 것이 오늘 집에 책상과 의자를 조립한 일이었다.
나는 지금껏 자취하면서 나만의 책상을 가진 적이 없었다. 4년을 살았던 자취집의 책상은 책장이 붙어있는 정말 작은 책상이었다. 작은 책상인 와중에 책상 왼쪽 밑에는 3칸짜리 서랍이 있었다. 근데 서랍이 크기가 커서 내가 다리를 넣을 공간이 너무 좁았다. 그 좁은 공간에 다리를 넣고 책상의 가운데에 앉아있으면 다리가 항상 왼쪽 서랍에 닿여서 불편했다. 책상의 오른쪽에 책장이 있다 보니 면적이 좁았다. 그래서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 스피커만 올려도 가득 찼다.
고민했던 A 집은 책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본 옵션으로 있던 책상은 너무 작았고 책상 바로 앞에는 큰 거울이 있는 게 싫었다. 반면 B 집은 옵션으로 책상과 의자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집에서 살지 고민할 때도 B집에 살게 되면 내 마음에 드는 좋은 책상과 의자를 두고 작업을 하면 너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책상과 의자를 구입하였고, 오늘 조립했다.
구매한 책상은 두닷 콰트로 1608이었다. 1608은 가로 160cm, 세로 80cm를 의미한다. 고향 집에 있는 책상은 1406인데(가로 140cm, 세로 60cm) 작은 것 같아서 큰 걸로 구매했다. 세로가 60cm 일 때는 컴퓨터 모니터와 너무 가까운 것 같았다. 조립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조립할 때 나사를 세게 조아야 흔들리지 않는다. 나사를 있는 힘껏 끝까지 돌리도록 하자.
조립하다 보니 저절로 땀이 나서 난방을 꺼버렸다. 상판 뒤집는 게 꽤 힘들다고 해서 겁먹었는데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책상 드디어 완성!
책상에 앞에 앉으니 너무 좋다. 너무 행복하다. 의자에 앉아있기만 해도 너무 좋다. 어릴 땐 책상과 의자가 이렇게 좋진 않았는데. 부모님 집을 떠난 이후에 살았던 집의 책상과 의자가 너무 불편해서 그런 걸까. 예쁜 옷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도 아니고 비싼 전자기기도 아닌 어릴 적부터 써왔던, 어찌 보면 심플하고 투박한 의자와 책상이 내게 이렇게 큰 행복을 주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신기한 일이다.
책상이 커서 빈 공간이 많지만 널찍한 게 기분이 너무 좋다. 그래서 책상에는 최소한의 물건만 올려두려고 한다. 원룸에 있던 온통 하얀 기본 옵션 책상보다 나무로 된 상판이 더 마음에 든다. 책상은 잘 조립돼서 흔들리지 않고 의자도 너무 편하다. 책상 밑에 받칠 발받침도 샀다. 이젠 좋은 책상에서 열심히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책상이 예뻐서 그런가 맥주도 예쁘게 잘 나오는 거 같당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