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향기가 나는 기쁨
어떤 행복은,
슬픔의 향기를 품고 있다.
화창한 가을날,
이유 없이 마음 한구석이 시큰했던 것처럼.
그것은 아마도,
오랜 어둠을 통과한 사람만이 비로소 볼 수 있는
아주 희미하고, 투명한 빛이었을 것이다.
가을의 한복판이었다.
삼청공원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 풍경은 노란빛과 초록빛이 뒤섞여 부드럽게 흔들렸고,
은은한 햇살이 잎사귀 끝에 머물다 바람결 따라 흩어졌다.
첫째가 갑자기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빠, 저 단풍나무는 왜 이렇게 커?”
아내가 웃으며 되물었다.
"플라타너스 아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모르게 불쑥 대답했다.
"맞아. 김현승 시인이 쓴 '플라타너스'라는 시도 있어."
아내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시를 찾아 조용히 읽기 시작했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가을빛 가득한 차 안에, 시 한 줄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때 아홉 살 딸아이가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 사람은 왜 플라타너스를 시로 썼어?"
나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어쩐지 조금 길게 대답하고 싶어졌다.
"음… 아마 그 시인은 마음이 아프고 외로웠나 봐.
그때 올려다본 하늘 아래,
플라타너스가 가만히 서 있었던 거야."
아이의 눈빛은 여전히 낯설고 궁금하다는 듯 흔들렸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게 예술인가 봐.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에
그걸 남기는 거.
사진이나, 글이나, 음악 같은 걸로."
딸아이는 말없이 생각에 잠기더니,
"신기하네…" 하고 중얼거렸다.
그 짧은 대화가 끝난 뒤,
나는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조용히 울리는 듯했다.
삼청공원에 도착하자 바람이 살짝 찼다.
나뭇잎들은 마지막 빛을 품은 듯 선명한 색으로 물들었고,
이미 타오르다 지듯 붉어진 단풍이
서로의 어깨를 기대고 있었다.
햇살은 나무들 사이로 스며들고,
아이들은 바스락거리는 낙엽 위를 뛰어다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풍경 속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날따라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렌즈 너머로는, 지금의 충만함이
끝내 담기지 않았다.
공원을 나설 즈음, 해는 기울고 있었다.
둘째는 뒷자리에서 곤히 잠들었고,
첫째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차창 너머로 노을이 번지더니, 어느새 진한 남색으로 바뀌었다.
도심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가을 저녁의 적막이 차 안으로 밀려들었다.
나는 운전대를 잡은 채 생각에 잠겼다.
오늘 오후의 장면들이
마음속에 자꾸 겹쳐졌다.
낙엽을 밟던 발소리,
아이의 가벼운 웃음,
플라타너스를 읊조리던 아내의 목소리.
따뜻한 행복감과,
시큰한 마음.
그 겹겹이 포개진 감정이 나를 흔들었다.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았던 오늘을,
시처럼 영원히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차는 느릿하게 집으로 향했다.
나는 그날의
이상하고도 시큰했던 행복감을
오래도록 잊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어렴풋이 짐작한다.
그날 나를 낯설게 했던 그 감정은,
슬픔을 통과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아주 옅고 투명한 기쁨이었다.
그건 아마,
오래 묵혀둔 슬픔이 햇살에 녹아내리며 내는
작은 소리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날은 이상하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고
계절은 그렇게 곁을 스쳐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