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대로 순순히 보증금을 돌려주고 벌금도 받지 않고 이사나가게 해주는 아파트 관리자는 관리자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 이사나가고 싶다면 남은 계약기간 동안 우리집에서 살 사람을 직접 구하라고 아파트 관리인은 친절하게 답장을 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번 쫒겨나볼까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쫒겨나는 것도 절차가 있어서 시간이 걸렸다. 누구를 위한 이사인가, 우리는 그냥 여기서 내년 여름까지 버텨야겠다.
아랫집 여자들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나는 딸아이와 크게 싸우는 일 없이 사이좋게 지냈다. 우리를 위해서 나에게 아이들 말고 집중할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이들이 집안을 돌아다니는 걸 줄여보려고 내가 매트에 앉아서 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집에서 서 있거나 누워서 자기만 했지 앉아서 애들이랑 잘 놀아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집안일이 밀린다는 게 충격적이다. 식탁에서 아이들이랑 같이 밥을 먹었더니 늘 돌아다니면서 밥을 먹던 딸아이가 얌전히 내 옆에서 식사를 마쳤다.
우리는 주말내내 오전에 집을 나서 오후에 들어왔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 틈틈히 나는 아랫집 여자들을 생각했다. 우리가 집에 없는 동안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딸아이 태권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마다 이층에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한다. 젊은 여자들이 왜 이렇게 집에만 붙어있는 건지 모르겠다.
아랫집 여자들이 싫어서 나는 일주일 넘게 그 여자들을 생각했다. 이게 무슨 한심한 짓인가 싶어 아이들 얼굴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즐거웠던 일을 떠올려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여자들을 잊으려 떠올린 모든 기억의 마지막은 우리집 현관문 앞에 서 있던 두 여자의 모습이었다.
참지 않고 내가 쏘아붙일 수 있었던 수많은 말들, 내가 애엄마가 아니라 잘 생기고 젊은 남자였다면 그 여자들은 수줍은 표정을 지었을까, 그 여자들 얘기가 끝나거나 말거나 현관문을 닫아버릴껄.
나는 행복했던 기억을 구경하고, 벗어나고 싶던 순간의 기억은 수정한다. 행복은 더하거나 뺄 것 없이 마침표. 불행은 지금 소용없는 만약에, 나중에.
올 겨울은 눈이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