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의 위력

by 준혜이

우리의 생각이 다를 때 싸우지 않고 결정을 내리려면 둘 중 하나가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너와 나를 분간하지 않을 만큼 가까워져서 그렇고 우리의 결정이 필요한 수많은 일 대부분이 사소한 것들이라 더 그렇다. 우리에게는 모두를 기쁘게 할 중간이 없다. 너에게 나를 강요한 뒤에 미안해하는 드라마만 있다.


딸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다. 남편은 출장지에서 계속 정형외과 의사 예약을 잡고 있었다.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딸아이와 둘째를 따뜻하게 돌봐줄 생각이었다. 남편이 알려준 병원 예약시간은 오늘 오후 1시 30분, 나는 애들 둘을 데리고 일요일에 갔던 응급실에서 둘째 엑스레이 결과를 받아 우버를 타고 정형외과 의사를 만나러 갔다. 뉴스에서는 오늘 날씨가 예의 없게, 쓰게 춥다고 난리였다.


엑스레이 결과를 받고 우버를 불렀다. 기계도 추위를 탄다. 25%였던 내 스마트폰 배터리가 찬바람에 4%가 되더니 꺼져버렸다. 간밤에 애들을 재우고 그 옆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하다가 그냥 잠든 탓이었다.


우버 기사는 우리를 찾지 못해 남편에게 전화를 해댔다. 몇 달 전 내 우버 계정에 문제가 있는 걸 바로잡지 않고 남편 계정을 같이 써서 벌어진 일이다. 애들이랑 길 위에서 추위에 떨다가 가까스로 우버를 탔는데 아저씨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다. 아저씨는 화장실이 급하다면서 근처 스타벅스에 차를 세우고 볼 일을 보러 갔다. 나는 꺼진 스마트폰을 보면서 집에 돌아올 걱정을 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아저씨에게서 커피 향이 났다. 아저씨는 더 이상 우리에게 불친절하지 않았다. 우버 아저씨의 아이폰으로 남편과 통화를 했다.


의사는 딸아이까지 웃게 하면서 둘째 진료를 보았다. 이름만 보고 인도 사람일 거라 생각했는데 문보다 키가 커서 진료실을 왔다 갔다 할 때마다 고개를 숙여야 하는 백인이었다. 나는 의사의 거대한 신발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의사의 신발을 보고 놀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둘째가 곧 예전처럼 걷게 될 거라고 했다. 붕대를 하고 있을 필요도 없다면서 둘째 다리를 감싸고 있던 것을 풀러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는 내가 일찍이 수학을 포기하고 의사가 될 생각도 해볼 수 없었던 게 후회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꺼진 스마트폰을 붙들고 의사처럼 아이들에게 괜찮아, 우리는 이걸 충전하기만 하면 돼,라고 말해보았다.


나는 충전기 구걸을 시작했다. 병원 직원들은 모두 아이폰을 쓰고 있었다. 던킨도너츠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던 사람들도 아이폰을 썼다. 세븐 일레븐에서도 나의 갤럭시를 충전할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충전기를 사서 던킨도너츠의 전기를 빌려 썼다. 스마트폰이 켜지고 남편을 안심시키고 우버를 불렀다. 아무래도 올해는 차를 사야 할 것 같다.


찬바람에 시달린 딸아이에게 충전기를 사면서 귀엽게 생긴 립밤을 하나 사줬다. 내가 헤맬 때면 우리 딸은 내 말을 한 번에 잘 들어준다. 나는 딸아이에게 병원에 같이 다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전업주부로 사는 일은 어른들만의 세계와 동떨어져 있고 집안일은 귀찮고 사소할 뿐이라 나는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고 쉽게 게을러진다. 그러지 않기로 시시때때로 마음을 다잡지만 그때뿐이다. 정신 차려야겠다. 사소한 일들이 계속되는 나의 일상을 깔보면 애들이 고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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