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의 밤

by 준혜이

화난 나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딸아이는 나보다 더 어른같다.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면서 딸아이는 자기 두 손을 어깨 높이로 들어올렸다가 바닥을 누르듯 차분히 내린다. 엄마, 잠깐만 내가 할 얘기가 있어.


아이들을 씻기는 일이 내 하루의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구는 나를 용서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화내고 싶지 않다. 쉽게 알아채기 힘든 아이들 마음을 얼룩지게 만드는 일은 이제 그만 하고 싶다.


나는 이대로 하루를 마치기는 싫어서 밤산책을 나섰다. 놀이터가 보이자 내 옆에서 사라진 딸아이와 유모차에서 발버둥치는 둘째는 나의 낭만적인 화해법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열 몇 살쯤이었을 때 나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한밤중에 울면서 입맞추는 연인을 훔쳐본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이 놀이터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술 냄새가 좀 가실 때까지 깜깜한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스무 살 무렵의 나 같은 여자도 여기는 없다.


그 모든 놀이터의 밤들을 지나 이렇게 가만히 벤치에 앉아 아이들이 크는 걸 지켜보고 있자니 내가 아이들없이 살았던 시간이 의심스럽다.


딸아이에게 소리치는 엄마는 미워요, 화내는 엄마가 싫어요, 말하게 만들고 우리는 사이좋게 잠들었다. 우리가 영원히 엄마와 딸로 살아갈 거라는 사실의 무게 조금 덜어는 딸아이의 고백이었다.









keyword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354
이전 03화내가 코딱지를 낳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