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가졌을 때 나는 점점 불러오는 배를 보고도 우리에게 태어날 아기가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오히려 작은 방에 놓인 아기 침대를 보면서 우리집에 아기가 살게 될 거라는 기대를 키웠다.
예정일보다 한 달 먼저 태어난 딸아이는 병원에서 일주일간 황달치료를 받았다. 치료라고 해봤자 파란 형광등 아래 누워있는 것 뿐이었지만 내 예상을 벗어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바람에 나는 아주 신경질적인 여자가 되어버렸다. 딸아이와 같이 일주일만에 병원문을 나서는데 집에 걸어가고 싶을 만큼 한 겨울의 바깥 공기가 좋았다.
집에 온 딸아이는 아기 침대에서 자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 때문이었는지 내 뱃 속이 허전한 탓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거의 하루종일 딸아이를 안고 지냈다. 흔들의자에 앉아 딸아이를 안고 아기 침대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헛돈을 썼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이사를 하고 2년 넘게 아기 침대를 조립하지 않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야 아기 침대는 자리만 차지하는 나무 처지를 면했다. 둘째는 아기 침대에서 깨지않고 자는 시간이 길었다. 나는 그게 불안해서 둘째를 데리고 자기 시작했다.
아기 침대에 쌓여가는 빨래한 옷가지들을 보다가 아기 침대를 인터넷 중고시장에 내놓았다. 금방 팔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기 침대가 의외로 쓸모없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집 아기 침대에 관심을 보인 엄마는 갓난아이를 입양 중에 있다고 했다. 나는 혹시 체인징테이블도 필요하냐며 여자에게 사진을 보내주었다. 여자는 남편과 상의해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입양이라는 말에 심장이 막 두근거렸다. 우리가 쓰지 않는 아기용품들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그 집에 갖다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자가 아이를 돌보면서 나한테 이것저것 묻고 우리가 친구가 되는 상상을 했다. 내 안에서 쉽고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 여자의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다.
여자에게는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연락해서 돈은 됐으니 침대랑 체인징 테이블 아기 장난감까지 가져가라고 할 수도 있는데 선뜻 그러지 못하는 걸 보면 내가 몇 푼이라도 손에 쥐고 싶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