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봄은 단어로만 존재하는 계절이 되려나보다. 온 가족의 여름옷을 꺼내면서 둘째 옷을 좀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녀야했던 모든 학교를 졸업한 뒤로 봄은 연기처럼 내 곁을 잠깐 다녀간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을 하루종일 본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기차를 타고 워싱턴디씨로 간다.
금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기차역에 양복입은 남자들이 많이 보인다. 기차 안에서 회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편도 기차에 타면 일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탈 기차는 Amtrak Northeast Regional 이다. 보스턴이나 뉴욕에서 출발해서 필라델피아, 워싱턴 디씨 외에 중간중간 작은 역들에서 멈춘다.
우리는 아침 8시 27분 기차를 Newark Penn Station 에서 탔다. 기차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어서 우리가 아이들과 같이 앉을 좌석은 찾기 힘들었다.
식당칸 뒤로 가면 빈좌석이 많이 있을 거라는 기차 승무원의 말대로 남편은 좌석을 찾으러 혼자 갔다가 열만 받고 돌아왔다. 승무원과 남편은 목소리를 높였고 딸아이는 집에 가자고 울었다. 남편은 승무원의 이름을 적은 메모지를 꼭 쥐고 한국말로 욕을 했다. 내가 영어로 크게 욕을 하는 모습을 한 번 봐야 남편이 정신을 차릴까 싶었다.
우리는 기차가 다음 역에 멈출 때까지 서 있었다.
기차가 멈추고 남편과 싸운 승무원이 우리에게 와서 자신이 이럴 필요는 없지만 우리를 비지니스석에 타게 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유모차를 끌고 플랫폼에 내려 비지니스석까지 걸어간 다음 기차에 다시 탔다. 남편과 승무원은 악수를 나눴다. 나는 이해 할 수 없었다. 말다툼도 남자들이 하면 스포츠가 되고 만다.
나와 딸아이에게 남편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 나라는 왜 기차를 선착순으로 타게 하는 건 지 모르겠다.
내가 기차 승무원이었다면 짜증이 나서 우리 가족이 서서 가거나 말거나 자리를 찾아주지 않았을 거라고 남편에게 말했더니 그럴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승무원은 이렇게 쉽게 도와줄 수 있으면서 왜 남편이 큰소리를 낼 때까지 우리를 모른 척 했을까.
상대방과 싸워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꿔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계속 싸우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편함을 참는다.
졸음 운전을 한 택시 운전 기사와 나는 싸운 적이 있다. 그 남자에게 택시비를 주지 않았으면 내가 이긴 싸움이 되었을텐데 나는 돈을 달라고 손을 뻗는 택시 기사가 무서워서 돈을 던지고 도망쳤다. 목소리를 높여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화를 내면서 처음 보는 사람과 싸우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 날 깨달았다.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잘 맺어진 부부인 것 같다. 내가 나 같은 남자를 만나서 세상의 모든 불편함을 참고 스스로를 탓하면서 사는 인생에 아이들은 무슨 죄일까, 상상만해도 우울하다. 남편이 자기 같은 여자를 만나서 기차 승무원과 지금보다 두 배로 큰 싸움을 벌이다 기차에서 쫒겨나면 아이들에게 면목없는 부모가 되겠지.
교양있고 우아하게 살려면 돈이 든다. 우리가 비지니스 좌석표를 사서 여행했으면 오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