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엄마

by 준혜이

아이가 벽에 낙서를 시작하고 나는 빈 종이 위에 그려질 아이의 그림을 기대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벽에다 낙서를 시작한 뒤 몇 년동안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기보다 플레이도로 케이크 만들기에 열중했다.


몇 달 전 부터는 딸아이가 플레이도보다 마커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딸아이가 하늘을 까맣게 칠해놓아서 깜짝 놀랐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내가 아이한테 뭔가 잘못해서 아이가 하늘을 까만색으로 칠한 건 아닌지 속앓이를 했다. 고민 끝에 나는 딸아이에게 하늘을 왜 까맣게 그렸냐고 물어봤다. 비구름이 뭉쳐 있어서 하늘이 까만 거라는 딸아이의 대답에 나는 감동했다. 내 딸이 미술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앞으로 딸아이의 그림에 참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주 전 H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그림대회 포스터를 보았다. 우리는 딸아이의 공식적인 첫 경쟁을 미술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림 주제는 휴가였다. 수영장을 하나 그리고 딸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집에서는 피카소가 따로없던 딸아이가 밖에 나오니 보통 어린이였다.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나의 착각, 그림 그리기 싫다는 애를 야단쳐가며 억지로 자리에 앉힌 어떤 엄마의 목소리, 그 와중에 우리 딸보다 더 난해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남자 아이들이 많다며 딸아이의 수상 가능성을 점치는 남편 때문에 나는 큰소리로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느라 고생했다. 나는 딸아이의 그림을 그냥 보고 있기가 힘들어 딸아이에게 수영장에 물고기라도 그리라고 지시했다. 딸아이 화풍의 특징인 동그란 빗방울도 잊지말고 빈 자리에 그려넣어달라고 나는 딸아이에게 애원했다. 올 여름에는 미술캠프에 딸아이를 보내야겠다는 얘기를 남편과 나누면서 집에 돌아왔다. 배운 애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긴 하다면서.


딸아이 그림에 왜 사람은 없고 집만 있는걸까. 이사다니기 싫다는 항의인가.


딸아이의 모든 말과 행동에 심각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자책하기를 멈추려고 하는데.


그림에 색을 저렇게 여러가지 쓰는 건 플레이도의 영향일까. 이 세상이 딸아이 눈에만 알록달록한가.


딸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지 궁금하다. 나는 영원히 제대로 알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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