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눈 감고 하는 일

by 준혜이

집안일을 하다보면 종종 전에 살던 아파트의 모습이 떠오른다. 새로운 곳에 익숙한 곳에서의 기억을 불어넣어 적응한다. 이 집의 좋은 점, 나쁜 점을 하나씩 찾아낼 때마다 전에 살던 집의 나쁜 점, 좋은 점은 위로가 되고 그리워진다.


내 인생의 뒤바뀐 순서는 아직까지 나를 내면적으로 방황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는 순서로 어른이 되는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미혼자가 룸메이트 한 명과 같이 살만한 아파트에서 아이 둘이 모두 일찍 잠든 밤 거실에 나와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을 때 나에게 들었던 그 마음은 분명 가방 속에 기저귀 말고 넣을 것이 많은 여자였다.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들여다보면서 살아야한다. 눈만 감으면 나는 어느 시간, 어느 장소 못 갈 데가 없지만 눈 감고 할 수 있는 일은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욕조에 물을 받아 아이들 목욕을 시킬 수 있게 되면서 집안일이 하나 줄었다. 아이들을 깨끗하게 만들어주고도 더러워지지 않은 물이 아까워 나는 욕조 속의 물을 화장실 앞 세탁기 안으로 퍼다날랐다. 드럼 세탁기가 아니어서 실망했다가 지구에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서 기쁘다가 허리가 아파서 매 번 이렇게 물을 나를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집안일은 줄어들 리 없다.


에어컨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여름은 더위가 심하다. 이 집은 에어컨을 틀어도 방마다 에어컨을 따로 켤 수 있었던 아파트만큼 시원하지 않다. 우리는 밤이 되면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돌리고 잔다. 둘째가 선풍기에 자꾸 손가락을 넣으려고 한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싫다.


동네 아이들은 저녁 늦게까지 밖에서 논다. 내년에는 딸아이도 저 아이들처럼 어른없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뛰어놀 수 있을까.


내일이 기대되고 어제가 그리워도 나는 오늘만 보기로 한다. 오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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