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일단 일년은

by 준혜이

이 집으로 이사 들어오던 날, 나는 이삿짐 센터 아저씨에게 트럭에 그려진 로고가 예쁘다고 말했다. 아저씨가 직접 그린 거냐고 묻자 아저씨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웃으며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내가 내년에 혹시 또 이사를 하게 되면 아저씨에게 연락하겠다니까 이 곳에서는 오래 살라고 한다. 이사와 전시회 사이를 오가는 아저씨의 일상에 대해서 나는 궁금한 것이 많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한 세계가 나를 위해 움직인다. 나는 그걸 구경만하고 있을 수가 없어서 가벼운 상자들만 골라 부지런히 날랐다.


이사와 전시회 2015, 7, 9


이사하는 날 아침,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몰고 온 트럭을 보고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이사하기 2주 전 아저씨에게 우리가 살던 곳이 방 하나짜리 아파트이긴 하지만 어른 둘과 아이 둘이 살았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집 안 가구들이며 쌓아놓은 상자들을 아저씨에게 사진으로 보내고 다시 확인 전화까지 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밴보다 큰 트럭같지 않은 트럭을 몰고 온 것이다.


트럭을 가득 채워 한 번, 반 만 채워 또 한 번 고속도로를 달린 뒤에야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길에다 한 시간을 버린 셈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한 시간을 제한 이사대금을 계산해보았다.


아저씨는 순순히 한 시간을 뺀 돈을 받겠다고 했다. 이사대금을 치를 때 벌어질 여러 상황을 머릿 속에 그려보며 싸울 준비까지 마친 나는 머쓱했다. 돈을 받아 급히 뛰어가는 아저씨를 보면서 우리 이사가 늦어져 아저씨의 하루가 길고 고생스러울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쾌했다. 아저씨는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우리는 돈을 주고 받을 때 실랑이를 벌였어야 한다.


얼마 전에 카톡에 모르는 사람이 추가되어있는 걸 발견했다. 예쁜 건축물 그림과 색연필이 프로필 사진이었다. 구글에 이름을 검색해보니 전시회까지 열었던 미술가의 카톡이었다.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미술가였다. 내가 이삿날 아저씨에게 화내지 못한 건 아저씨의 순한 태도 때문이었는데 정말 내 짐작대로 아저씨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모양이다. 인터넷에 그 흔한 리뷰마저 하나 없다.


아저씨는 반듯하게 접혀 차곡차곡 포개진 빨래방의 셔츠를 그려 전시회를 열었다. 이 세상 많은 집의 이사를 하면서 얻은 영감으로 아저씨가 다음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면 좋겠다.


노동하는 예술가, 생활하는 예술가 아저씨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이삿날 구부러진 서랍장 손잡이가 아주 마음에 든다.







이 집은 전에 살던 집보다 넓다. 차고가 있어서 안쓰는 물건들, 유모차, 자전거를 이제 더이상 집 안에 두고 살 지 않아도 된다. 집에 빈 공간이 생기자 내가 가진 것이 적다는 생각이 다. 나의 소유가 이 집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내 생활 자체가 어른 옷을 입고 있는 아이꼴 같아 달라지고 싶다.


상자에 담겨 버려지지도 쓰이지도 않는 물건을 다음 이사 때까지는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하나 고르고 사는데 들인 크고 작은 마음과 돈에 대한 예의는 이제 지킬만큼 지켰다는 메모와 함께 사라지는 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겠지. 내가 싫어해서 상자 속에 담아놓은 물건은 지금 당장 필요한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 집의 빈자리는 아이들이 알아서 채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4년 동안 없이 살았던 텔레비전만 하나 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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