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수학을 포기한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가 수학 천재로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드라마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딸아이도 나랑 같은 생각인지 매일 유치원에 다녀와 푸는 산수 문제집을 지루해한다.
집중해서 풀면 15분이면 끝낼 문제들을 딸아이는 가끔 두시간 동안 풀기도 한다. 문제집에 그림을 그리거나 동생에게 말을 걸고 나한테 괜한 것을 물어보면서 말이다. 나는 그러는 딸아이를 이해한다. 앞으로 딸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해야할 공부와 치러낼 시험을 생각하면 내 나이가 다행스러울 정도니까.
숫자를 잘 알면 나중에 우주선을 만들 수 있고 궁전도 지을 수 있어. 별까지 가는 길도 찾아낼 수 있다니까. 딸아이를 위한 나의 응원가는 거대하다.
어제는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와 텔레비전을 보면서 선생님이 오늘 산수공부는 자기 전에 하라고 말했다고 했다. 자신의 요구를 쉽게 들어주지 않는 나에게 선생님의 권위를 빌려 설득하는 딸아이가 나는 재미있다. 딸아이 머릿속 세상을 한 번 들여다보고 싶다.
엄마가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자기 전에는 치카치카 하느라 바빠서 안된다고 얘기할게.
거짓말이 들통날 위기에 처한 딸아이의 두 눈동자가 커진다. 만화가 끝나면 산수 문제를 풀겠다면서 딸아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선생님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큰소리로 웃고 싶지만 참는다. 혹시 딸아이가 유치원에서는 우리 엄마가 그랬다면서 친구들을 설득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세상을 놀라게 할 거짓말을 하고 싶다.
사실 나는 수학천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