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 어렵겠지만 대머리 남자, 잘 나가는 남자입니다. 이 남자가 병원에 입원하던 날, "나무에 알 밴 무당벌레 꼬이듯 여자들이 꼬였으니, 니가 이제는 죽을 때가 됐지" "나는 그 나무에 부화한 애벌레도 다 여자였으면 좋겠어" 이런 대화를 나눈 우리는, 부부입니다.
저는 그동안 이 남자를 제 남편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라고 소개하며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유하면 안될 것을 탐한 댓가로 저의 결혼생활은 늘 여자들로 붐비는 커피숍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뭐, 인테리어는 꽤 괜찮았어요. 제가 이 남자의 아내로 오랫동안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매력적인 나뭇꾼의 빈티지 지게를 숨긴 나이 든 선녀의 심정을 알아달라는 구연동화같은 저의 술주정 덕분이었습니다. 남편은 기립박수를 치며 저와 계속 같이 살고 싶다는 뜻을 전했지요.
잘 보세요. 양 쪽 귀에 피어싱 흔적을. 이 남자,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뭐, 타고난 멋이 있어 무엇이든지 다 소화하는 그런 남자이기도 했지만요.
매일 아침 남편의 출근 준비는 그를 졸졸 따라다니며 지켜보던 저를 신나게 만들었습니다. 늘 이런 날이 계속 될 줄로만 알고 있었건만, 대머리! 이것은 저와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 그리고 그의 사랑 모두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의 죽음만큼 받아들이기 힘든 대머리인 셈이지요. 뱃 속이 아픈데 머리는 왜 빠지는 거냐며 이 남자의 가장 어린 사랑은 절규합니다. "만져봐, 신기한 느낌이야" 라며 저는 그 어린 여자를 달랬습니다. 세례식을 주관하는 듯 경건한 시간이었지요. 그런데 어린 여자야, 너는 우는 것도 참 예쁘구나.
대머리마저 스타일리쉬하게 소화해버린 남편은 매일 거울을 보며 눈썹을 그려야했습니다. 눈에 띄게 짝짝이인 남편의 눈썹 때문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남편의 표정도 하루하루 슬퍼져만 갔습니다. '대머리까지, 그래 오케이. 눈썹은 안된다고!' 라는 그의 혼잣말을 들은 날, 저는 병실에 있는 거울을 전부 치워버렸습니다.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여자들은 그의 멋있는 사진을 한 장씩 가져와 남편에게 선물하며 그 사진들로 거울을 대신하게 했습니다. 사진 속의 그는 모두 제 각각이어서 이것이 과연 한 사람의 사진인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를 바라보던 표정으로 다른 여자를 바라보지 않는 그는, 타고난 배우이거나 우리를 하나하나 진심으로 사랑한 것이겠지요.
그가 다음에는 여자로 태어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신같은 남자에게 사랑받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고 낄낄거립니다. 잘 지내라고 인사합니다.
보고 싶을꺼라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리고 더이상 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