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헤어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만나기 시작한 지 5년 만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우리의 연애 속에 부지런히 오고 가던 계절이 하나에서 멈추어 버린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겨울, 겨울.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 같은 이번 겨울을, 우리는 이별로써 벗어나기로 했다.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 5년이나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나는 스무 살 시절 짧게 만났다 헤어진 여자 친구를 떠올렸다. 소주 두 잔에 취해 울며불며 헤어지자고 말했던 여자애. 울고 있는 여자애를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헤어지자 말하는 그 여자는 더 이상 내 여자가 아니었다. 내 앞에 있지만 없는 거나 다름없는 사람, 사귀다가 헤어지는 건 그런 것이었다. 나는 여자애의 우는 얼굴을 보면서 얘가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생각했다.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그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장미꽃을 한 송이 사서 들고 다니다가 편의점 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려버렸다. 꽃을 좋아하는 누군가는 이걸 보고 가슴 아파할지도 몰라, 나는 쓰레기통 앞에 서서 내가 버린 꽃을 곧 꺼낼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꽃은 꽃인가 쓰레기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쓰레기가 아니어도 버려지는 것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잠들기 어려운 밤이 계속되면 나는 상실의 시대를 읽는다. 그러면 더 잠이 오지 않는다. 괜찮다, 오랜 불면의 끝에는 죽음 같은 수면이 있을 테니까.
나는 고개를 들어 북해의 하늘에 떠 있는
어두운 구름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는 여러 길목에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었거나 또는 사라져 간 사람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추억들,
그리고 그 상실의 모든 아픔들을.
무라카미 하루키/상실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