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안녕

by 준혜이

떠나는 게 익숙한 남편을 공항에 남겨두고 우리는 시카고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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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처음 들어간 날 나는 침대에 누워 가방을 열고 셔츠와 바지를 꺼내 옷걸이에 거는 남편을 구경했다. 남편이 혼자 사는 집에 놀러온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 왜 집에서는 남편이 옷을 아무데다 벗어놓는 건지 따지고 싶어지는 걸 참았다. 이건 남편 잘못이 아니라 출근과 퇴근, 평일과 주말의 차이일 뿐이라고 안쓰러워하기로 하면서. 나중에 우리가 서로의 옆집에서 살면 재미있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은 서로의 공간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고 하고 다 귀찮으니까 혼자 좀 살아보고 싶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남편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둘째를 아기띠로 안고 유모차에 카시트를 태워 공항을 누볐다. 이런 내 모습이 곤란한지 딸아이는 피카츄 인형을 꼭 끌어안고 별 말없이 게이트까지 잘 걸었다.


비행기 좌석에 내가 둘째의 카시트를 고정시키는 동안 신발을 한 짝만 신은 둘째가 울면서 통로를 왔다갔다했다. 딸아이가 승무원에게 동생 신발이 없어졌다고 얘기하는 걸 카시트 안으로 비행기 안전벨트를 거의 다 끼웠을때 들었는데 승무원이 기내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아기가 신발 한짝을 잃어버렸으니 찾으면 갖다달라고.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을 다른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해결해주니까 나는 귀 뒤가 다 뜨거워지도록 고마웠다. 무언가로 속상해 있는 아이들에게 괜찮다 말하고 넘어가버린 순간들이 떠올라 가끔은 아이들을 손님처럼 대할 필요가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이번에도 둘째 신발을 찾지 못했으면 나는 그냥 그러려니 우는 둘째를 초콜렛이나 과자로 달랬을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승무원끼리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기내방송을 해 준 승무원이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그 할머니 승무원의 유난한 친절함이 마지막을 향해있어서라면 나는 결코 아이들을 손님처럼 대할 수 없겠다. 우리가 함께 하는 오늘이 혼자되는 내일을 목표로 삼지 않는 이상 솔직하게 살아야지 화해하면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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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나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한국에 가 볼 용기가 나지만 당분간은 상상만으로도 용감하기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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