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k Right
Cayman Islands
휴가만 기다리는 직장인, 방학에는 무언가 재미있는 걸 꼭 해야한다고 믿는 초등학생, 우리가 하라는대로는 하기 싫은 어린이집 어린이,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편한 내가 언제나 그랬듯이 같이 여행을 한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여행짐을 싸는 순서가 바뀌었다. 원래는 남편, 딸, 아들, 나 이렇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의 짐부터 쌌는데 내가 아들, 나, 딸, 남편 이런 차례로 짐을 싸고 있었다. 이 순서의 기준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로 닮은 성격의 식구대로 짝을 지은 것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혹시 편애하는 게 아닐까 고민에 빠질 뻔 했는데 나를 자주 불편하게 하는 두 사람의 옷을 챙기느라 마음이 바빠지고 말았다. 어쨌거나 네 살 나이터울의 두 아이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Cayman Islands 에 한국 여권으로 들어가려면 관광비자를 받아야한다. 하지만 나는 캐나다 영주권자라서 무비자로 Cayman Islands 에 입국 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이 사실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도 나는 만에 하나 생길지도 모르는 불운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나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일,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이면 안되는 상황을 모두 피하면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미용실에서, 치과에서, 비행기 안에서, 국경에서. 내가 겨우 이런 것들에 마음 졸이며 살아간다니 별 일 없는 나의 일상이 정말로 소중하다.
뉴저지 Newark 공항이나 뉴욕 JFK 공항에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Cayman Islands 로 가는 직항이 없어서 우리는 워싱턴 D.C. Dulles 공항까지 운전해서 간다. 남편은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차에 짐을 싣고 운전을 했다. 일상으로부터 도망치는 남편과 달리 나는 작은 이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루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가방에 담은 우리의 생활을 부치고 검사받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기적인 존재감을 부지런히 발휘한다. 나는 여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여기 이 순간만 지나가면 괜찮아진다고 아이들을, 나를, 남편을 달래본다.
한 달치쯤이 농축된 스트레스에 마음속으로 틈틈이 비명을 지르다가 일단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으니 나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편안히 다 받아들이고 말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사람이 죽어갈 때 이런 기분이면 좋겠다. 물론 죽음을 목표로 사는 사람은 없겠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지켜야 할 일이고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가면 그동안의 고생은 끝나야 하는 거니까. 놀러가면서 이런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별 거 없는 내 일상에 마침표도 없어서 자주 지겨웠다. 그래도 여전히 소중한 우리의 생활이라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관광 비자 있니? 그린 카드 있니?
나는 캐나다 영주권 카드가 있어.
Cayman Islands 에 도착해서 처음 가보는 나라로의 여정을 감당 못하고 포기해버리는 날이 오기 전까지 아이들이랑 사이좋게 다녀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보다 아이들이 더 나이들어서 스스로를 돌볼 정도가 되면 같이 다니는 게 편해지겠지, 생각하다가 그 때는 내가 아이들에게 오히려 구박당하면서 다니겠지, 아니 우리랑 같이 다니고 싶어할까,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가버렸다.
Cayman Islands 는 신나게 덥고,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차만 타도 흥미진진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