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대화가 필요해

by 준혜이

우리는 여전히 집에 있다. 하루하루 비어가는 냉장고 안에서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를 확인하면서. 늘 어딘가를 채우고 비우는 반복속에 어른들은 놀라고, 아이들은 자란다. 나의 하루는 아이들이 비운 우유의 양과 계란의 갯수로, 앞으로 채워야 할 간식의 양과 종류로 숫자가 된다. 정확한 계산없이도 내 안에서 끊임없이 느껴지는 숫자의 존재를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아끼고 있다.

집에서 아이들은 주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지낸다. 아이들이 관심을 가진 건 아이들이 잘 알게 되고, 재미없어하는 건 아이들의 세상에서 점점 사라져버리고 만다. 오늘을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 아이들을 어떤 어른으로 살게 할 지. 아이들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 것을 주워담고 치우며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아이가 자라야 어른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지도 위의 나라 이름을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우리가 가본 적 없는 나라로 떠나는 상상도 해본다.

우리가 시간이 멈춘 듯한 생활을 하는 동안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졌다. 우리에게는 마음과 상관없이 꾸준한 몸을 돌보는 건강한 정신이 있다. 길어진 앞머리가 거슬린다는 딸아이의 머리카락을 다듬어주고 나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긴머리로 맞이해볼까한다. 집에서, 그 주변에서 우리끼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건 우리에게 해로운 일이 분명하고, 마스크가 일상화 된 시대에 머리라도 길러야되지 않겠어요, 옷이라도 알록달록 입어야되지 않겠냐고요. 마음을 달래는 대화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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