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못하는 여자

by 준혜이

침팬지는 오랜시간 훈련해 온 대단한 묘기들을 사춘기에 들어서며 모조리 한 번에 다 잊어버린다. 프란카는 모든 지식을 잊은 채 머리카락만 빗고 있다. 어떤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다. 여자는 이 부분을 사춘기 딸에게 화가 난 아빠가 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보려는 시도로 읽는다.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 여자가 부리던 묘기는 뭐가 있었나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앞구르기, 뒷구르기, 수영.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여자는 동네에 새로 생긴 실내 수영장에서 아빠한테 수영을 배웠다. 주로 토요일에 아빠랑 동생이랑 셋이서 수영을 하러 다녔다. 여자 탈의실에 혼자 들어갔다가 나오면 아빠랑 동생이 나란히 서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는 그 둘을 친구처럼 반가워했다. 수영복을 입고 한 번,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또 한 번. 아빠와 동생 앞에 짠하고 나타나는 기분이 좋았다. 가끔 여자 앞에 아빠와 동생이 짠하고 나타나는 것도 좋아했다.

콘택트렌즈를 끼고, 교복을 입었다. 집에서는 해야할 말만 했고, 여자가 엄마에게 말을 많이 하는 날은 무언가 숨길 것이 있는 날이었다. 더이상 수영복은 입기 싫었고, 바다로 떠나는 여름 휴가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사춘기였다.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묘기는 잊었어도 사춘기 청소년으로 사는 것 자체가 외줄타기였다. 여자가 해야하는 것, 하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모두 시시했다. 여자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여자가 비키니를 입고 누워있다. 몸과 모래 사이 새로 산 비치타월이 까끌거린다. 여자는 자신의 발 끝을 보고있다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모두 비슷해 보인다. 사람 없이 파도를 타는 커다란 튜브도 있다. 누군가 수영을 한다. 파도가 오는 쪽으로가 아닌 해안선을 따라서 가고 있다. 그가 지나가면 모여있던 사람들이 흩어지고, 바다와 하늘을 넘나들던 공도 멈춘다. 여자는 몸을 일으켜 바다로 걸어간다.

바닷물에 얼굴을 담근다. 다리를 뒤로 쭉 뻗는다.여자의 온 몸에 빈틈없이 물이 닿는다. 두 팔을 하나씩 휘저어본다. 자유형이라고 배형이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돈다. 그렇게라도 천천히 땅굴을 파듯 눈을 감고 몸을 움직여 바다 속에 사라지는 길을 낸다. 큰 파도 한 번에 여자의 몸이 모래 사장으로 밀려났다. 또다른 큰 파도에 여자의 몸이 바다로 끌려들어간다. 여자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Where do we go from here, Dorris Dorrie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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