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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Diary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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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Aug 10. 2020

조용필

 이 옛날 노래는 뭐야? 남편이 물었다. 조용필. 내 장례식 때 이 노래 틀어줘. 장례식에서 노래를 트나? 남편이 말했다. 틀고 싶으면 트는 거 아니야? 러브 액츄얼리에서 그랬는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온전히 주인공인 식은 이제 장례식 밖에 안 남았어. 장례식 초대장 쓸거야. 드레스 코드도 있어. 남편은 말이 없다. 나에게는 아직 할 말이 더 남아 있지만 침묵을 존중한다. (내 장례식에 올 사람들은 무채색 옷은 입을 수 없어. 초대장은 이렇게 쓸거야. 신발을 혼자 신을 수 있다면 나의 장례식에 꼭 와주세요.)

 전주가 시작되면 마치 나에게 전생이 있었던 것처럼 오래된 기억 속 노래의 후렴구가 입 밖으로 살아나온다.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꿈, 조용필)  나의 의지로 조용필을 검색한 건 서른이 넘어서였다. 어려서 흘려듣던 조용필 노래 가사는 금세 또렷해지는데 내가 어떻게 그 시절을 보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전생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어린 시절.

 언제까지 들을거야? 남편이 물었다. 그만 듣고 싶어질 때까지. 안 그럴 거 같지만. 자꾸 들으니까 괜찮네. 남편이 말했다. (그러면 네 장례식에서 내가 이 노래 불러도 돼? 우리가 이대로 별 일 없이 살아간다면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 거 같은데. 장례식 끝나고 나는 요양원 들어가서 몇 명 없을 오빠들 무릎 위에서 남은 생 잘 마무리 할게. 아, 진짜 이렇게 하지도 못할 말은 왜 자꾸 생각나.)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 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꿈, 조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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