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가 노르웨이의 숲이기만 했다면 중학생이던 내가 책장에서 상실의 시대를 꺼내 읽어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책을 펼쳐 대충 읽어보다가 어느 부분에서 단어를 읽기도 전에 보고 놀라 눈을 뗄 수 없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하루키의 이야기는 나에게 전해지지 않았고 상실의 시대는 충격적인 단어집이 되어버렸다. 티비 광고에 나오는 상실의 시대를 보고 뜨끔했던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면 그 고백 자체가 상실의 시대 속 주인공들이 나누던 대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생이 되어서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침착하게 읽어나갈 수 없는 건 여전했지만 하루를 보내는 틈틈이 잠깐이라도 그 책에 나오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이 있었다. 이게 뭐지, 걔네 왜 그랬지, 나였으면 차라리, 하면서 자꾸 생각하다가 하루키가 싫어졌다. 그래서 앞으로 하루키가 쓴 책은 돈을 주고 사서 읽지 않겠다 결심하고 그가 쓴 책을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는데로 모조리 다 빌려읽었다.
나 너 정말 좋아해, 미도리. 진짜 많이.
얼마나 많이?
봄날의 곰만큼.
미도리와 토오루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좋다.
더위를 심하게 타는 남자 친구에게 내가 널 만나러가기 전에 냉동실에 한참 들어갔다 나올테니까 꽁꽁 얼어붙은 나를 시원하게 업고 다니라고 했었다. 그 때 남자 친구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쳐버렸으면 하고 바랐는데. 남편이랑 연애할 때는 남편이 대머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수줍게 고백했다가 이런 미친*을 봤나, 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이게 뭐지, 얘 왜 이러지, 나라면 차라리, 하는 마음으로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2020년 여름, 아이들을 상대하기는 싫고, 시간은 많아서 심심한 날에 영어로 번역된 노르웨이의 숲을 읽는다. 모국어로는 눈에 가시같던 단어들이 외국어로는 봐줄 만 하다.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는 한국어로, 주인공들의 모습과 그들이 함께 있는 장면은 영어로 더 잘 알게 되었다. 미도리 같은 여자가 되어 토오루처럼 사랑하고 싶다. 이게 뭐지, 사랑. 걔네 왜 그랬지, 죽은 사람 보낼려면 굿이라도 해야지. 나였으면 차라리.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개미만큼 너네를 사랑해.
우리를 싫어한다는 거야?
사랑한다니까.
엄마 개미 싫어하잖아.
그래, 맞네. 엄마가 그냥 너네 사랑해.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