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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Diary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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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Sep 18. 2020

밤에 우리는

 이제 불 끈다, 하면 아이들이 잠시 조용해진다. 우리는 아직도 한 방에서 넷이 같이 잔다. 방은 따로 갖고 싶지만 밤에 따로 잘 수는 없다는 아이들. 예전에는 매트리스 하나에서 다 같이 잘 수 있었는데 지금은 매트리스 두 개를 붙여놓고 두 명씩 짝을 지어 자고 있다. 둘째는 마음 내키는 대로 두 매트리스 사이를 요정처럼 오간다. 모두가 자신의 옆에 눕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그리고 결국에는 내 옆에 누워 내 목을 꼭 끌어안고 가족 중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라고 말한다. 나는 큰 애 눈치를 봐가며 둘째만 들을 수 있게 나도 네가 제일 좋아, 얘기한다. 우리는 어두운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서로의 두 눈을 마주 본다. 아이의 눈이 깜빡이는 속도가 느려지고 어느 순간 아이의 눈동자가 반짝이던 자리에는 두 개의 까만 선만 또렷해진다. 지구의 밤, 사람의 밤 모두 불이 꺼졌다.

 밤에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낮에 우리가 서로에게 하는 말보다 잘 들린다. 서로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는 없지만 할 말을 고르는 동안의 침묵 속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한낮에는 별 의미 없이 떠돌다 사라져 버릴 마음도 밤이 되면 말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잠들기 전에 한참을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한다. 이 시간은 하루 속의 또 다른 하루,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세계로 우리만 안다.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도 전에 잊힐지도 모를 어린 시절의 느낌은 우리가 매일 같이 보내는 밤 같았으면 좋겠다. 웃기고, 더럽고, 심각한 그런 밤.        

아들: 결혼은 어떻게 하는 거야?  
나: 왜, 너 결혼하게? 너한테 좋아하는 여자가 생길 거야. 그러면 같이 영화도 보고, 공부도 하고, 볼링도 치러가고, [울먹인다.]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 (빙하가 많이 녹았다는데)
딸: 그걸 데이트라고 하는 거야.
나: 그러다가 네가 좋아하는 여자랑 같이 살고 싶으면 결혼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봐.
딸: 그걸 프러포즈라고 해.
나: (여자가 싫다고 할 수도 있어. 그러면 다른 여자를)
아들: 엄마, 아빠가 결혼할 때 나는 없었지? 나는 아이를 가르칠 줄 모르는 데 어떻게 해.
나: 너 아빠 될 거야?
아들: 어.
아들: 나만 빼고 가족들이 다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
딸: 조용히 해.
나: 그때는 너도 어른이니까 괜찮아.
아들: 엄마 백 살 되려면 얼마나 남았어?
딸: 조용히 하라고.
나: 64년.
아들: 나는 백 살 되려면 얼마나 남았어?
나: 95년.
아들: 엄마가 백 살이면 나는 몇 살이야?
나: 69살. 누가 방구꼈어?
남편: [게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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