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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Diary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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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May 30. 2020

무대

같이 밥을 먹다가 직장 상사의 전화를 받는 남편을 본 적이 있다. 직장 동료들과 회식을 하는 남편 옆에 있었던 적도 있고, 회사 사람들과 회의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닫힌 방문에 귀를 붙이고 몰래 엿들어본 적도 있다. 바깥 세상에 나가있는 남편의 모습은 우리가 회사에서 만났으면 일만 했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 이렇게 얘기해도 남편은 서운해하지 않는데 그건 우리가 이제는 서로에게 밖으로 보이지 않는 비밀이 되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학교 수업을 받는 딸아이를 매일 본다. 딸아이는 언제나 긴장된 표정으로 선생님이 묻는 말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다. 우리가 엄마와 딸 사이가 아니었다면 나에게 딸아이는 그저 호기심 많고 창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아이였을거라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가 볼 수 없는 자리에서만 될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을 아이가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이제 그 비밀스러운 성장이 우리집 거실에서 비극적으로 펼쳐지게 되었다. 나는 연극의 관객이 된 심정으로 아이의 무대에 침입하지 않기로 한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한숨을 쉬며) 실망한다. (창 밖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한다. (쇼파에 앉아 책을 읽는 척하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온몸으로 감지한다. (부엌으로 들어가서) 혼자 몽쉘을 두 개 먹는다. (독백) 아니 내가 너를 기분 나쁘게 만들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퇴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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