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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Dear Diary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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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Mar 25. 2020

코로나 시대의 사람

 우리는 모두 집에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남편은 출장을 못가고,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별 의식없이 자연스럽게 살아온 일상이 우리를 집에서부터 얼마나 멀리까지 데리고 다녔는지, 그 먼 데서 우리가 내일을 얼마나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었는지 우리의 생활이 이토록 작아지고 나서야 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마주하는 눈동자와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가 우리가 가진 전부라면, 끝내 우리에게 남겨질 모든 것이라면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세상이 되어야하는 걸까.

 모니터 속의 여러 얼굴이 서로를 바라보며 할 말은 제대로 못하고 인사만 나눈다. 집에서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딸아이와 같은 반 아이 엄마가 그룹 화상 채팅을 준비했는데 아이들이 어색해한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이 이런 만남에도 익숙해질거라 기대한다. 반 친구들과 화상 채팅을 마친 딸아이의 얼굴에서 이걸로는 부족해하는 마음이 보인다. 화면 속의 납작한 얼굴은 한국에, 캐나다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로 이미 충분한데 말이다.

 아무때나 방 문을 열면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주말부부로 5년을 살았는데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나갈 수 없게 된 이 상황을 남편은 무척 기뻐한다. 둘째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해 늘 미안해하던 남편이 저녁마다 아이와 시끄럽게 놀아주고 아이의 이를 닦아준다. 모든 불행에는 어떤 다행이 있다. 바깥 세상이 우리의 일상을 침범하려 할수록 드러나는 하나의 자리에서 우리는 아마 오랫동안 안전할 것 같다.

 그동안 내가 조용히 혼자 보낸 시간이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 덕분이었다는 걸 끝 모를 이 기간이 시작되자마자 알았다. 학교가 아이들만을 위한 곳이 아닌 것이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는 나는 마음속으로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한다고 되뇌인다. 그래서 딸아이는 피아노 선생님 없이도 피아노를 고 둘째는 딸아이가 타던 자전거를 물려받아 탈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멈춘 것 같지만 아이들이 자란다. 나의 세상은 아이들이 되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오래 전에 우리가 시작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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