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바라 왔다. 12월의 마지막 날에는 술에 취해, 아니면 그 무엇에라도 취해 개망나니가 되어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고. 망한 상태로 시작해서 점점 나아지는 날만을 맞이하겠다는 장난 같은 소원이지만 이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은 엉망진창인 내 모습을 이해해줄 남편의 넓은 마음과 남편 앞에서만 망가지는 건 완전히 망한 건 아니니까 엉망이 된 나를 보고 재미있어하다가 결국에는 나보다 더 웃기게 취해버릴 친구를 찾아 초대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들끼리 놀아도 될 만큼 성장한 아이들. 하지만 2020년은 그 시간 자체가 취소의 연속이었으므로 내 소원 역시 이루어질 리 없었다.
그렇다고 실의에 빠져 이불속에서 자는 둥 마는 둥 새해를 맞이하기는 싫어 우리는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짐을 싸서 올여름에 이사 갈 보스턴으로 동네 구경을 떠났다. 코로나 검사 없이 주를 이동하다 걸리면 벌금이 500불이고 혹시 우리도 하는 마음도 있어서 겸사겸사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가족 모두 음성이었다. 그걸 보고 그냥 막살아버릴까, 하는 마음과 더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는 사람이 될 수는 없어 우리는 앞으로 더 조심하며 살겠지만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보스턴으로 떠나기 전에 부동산 업자를 통해 알아본 동네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 알고 있는 동네 이름을 모조리 다 말해보면서 보스턴을 낯설지 않게, 우리끼리 살아볼 만한 도시로 만들어보았다. 예전에 보스턴에서 살아본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우리의 상황이 달라져 그 시간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우리가 언제 이렇게 나이 들었나 생각하게 할 뿐이었다. 모든 선택이 가능해 보이고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커져버린 지금이 버겁다고 느끼면서 새해를 보스턴의 어느 호텔방에서 맞이했다.
1월 1일 00시 00분부터 나타나는 진심으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 캐나다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 뉴저지에 있는 친구들과 따뜻하고 다정한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 말속에 존재하고 있던 기억이 나의 시간과 공간 감각을 어지럽히다 외롭고 불행한 쪽을 향했다. 소원대로 망했네, 취했네, 마음이 완전 개망나니네.
이걸로도 부족했는지 새해 새벽 3시 호텔에서는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둘째는 자다 깨서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이제 나는 죽는 거냐고 울고, 첫째는 화재 경보음을 무시하는 태도로 좀 더 누워있다가 우리를 따라 방 밖으로 나섰다. 침대에 누워서 경보음을 들었을 때는 별로 두렵지 않았는데 비상구 계단을 내려가면서 호텔방에 두고 온 물건들 생각에 정말 불이 난 거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다양한 잠옷 차림에 한결같이 마스크를 하고 있는 호텔 투숙객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웃기고, 불이 난 건 아니고, 소방차 두 대에서 내려 출동하는 소방대원들은 영화배우처럼 멋있었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반대편에서 이루어진 것 같던 나의 소원은 차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