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집으로 와 07화

룸메이트

by 준혜이

남편이 새로운 회사로 첫 출근을 했다. 출근이라고는 하지만 얼마 전과 다름없는 재택근무. 그동안 남편이 나에게 보여준 재택근무자의 출근은 아침에 잘 수 있을 때까지 자고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는 것이었다. 스마트폰 알람 소리, 찬장에서 머그잔 꺼내는 소리, 의자 쿠션이 몸에 짓눌리는 소리가 차례차례 들려오는 아침이면 침대에 누워 눈도 뜨지 않았지만 물소리가 나면 나도 모르게 눈이 떠져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 있었다.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의 남편은 와이셔츠에 속옷 차림, 그 밖의 날은 러닝셔츠에 속옷 차림인 채로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봤다. 빨래 바구니가 가벼운 나날이었다.

전에 다니던 회사를 어렵게 그만두고 새로 일을 시작하기까지 남편에게는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다. 남편이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는, 그 일주일 동안 밥을 하지 않았다. 예전처럼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남편은 자주 한숨을 쉬며 밥을 하고 뛰러 나갔다. 일하지 않는 시간이 아까워 늦잠도 자지 않는 남편을 존경해 나는 아주 오랜 시간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런 식으로 오전에는 생활에서 벗어난 존재로 쉬기만 했다. 숨을 쉬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재택근무자의 이직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지난 회사와의 과거를 청산하려는 의도였는지, 남편은 자신이 일하던 방을 딸아이에게 넘겨주고 안방 벽장을 비워 사무실로 만들었다. L자 모양 책상을 사고, 책상 위에 올려놓을 스탠드 조명도 사고, 유튜버들이 쓴다는 조명까지 산 뒤 남편은 컴퓨터 모니터 속에 보이는 공간과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머리를 깎아야겠어, 네가 하는 건 안 되겠지, 남편은 당장 미장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이발을 했다.

이른 아침에 샤워하는 남편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제 더 누워있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떴는데 시끄럽게 벨트 채우는 소리가 났다.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잘 차려입은 남편이 머리에 젤까지 바르고 벽장 속으로 들어가는 걸 배웅하지 않는 건,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고 고백하고 싶었다. 나의 눈길에 남편이 수줍어하며 왜, 라는 말만 반복했다. 남편이 그동안 자신이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지내왔는지를 순간적으로 되돌아본 듯했다. 무언가 시작되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이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시작도 기대라고도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이제부터 나도 매일 옷을 갈아입어볼까.

사람들이 모여서 일할 수 없는 지금, 남편과 함께 새로 일을 시작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기 위한 퀴즈를 낸다. 그 첫 번째는 각자의 냉장고를 찍은 사진을 모아 냉장고의 주인을 알아맞히는 거였다. 동양인의 냉장고라는 걸 들키면 안 돼, 우리는 사진을 찍기 전에 쌈장을 뒤돌아 서게 만들었다. 누구라도 쉽게 우리 집 냉장고를 우리의 것이라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사진을 찍으면서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우리 집 냉장고는 룸메이트와 살고 있는 사람의 냉장고였다. 먹던 케첩 두 통과 열지 않은 케첩 하나 때문이었다. 세 명의 룸메이트와 각자의 케첩들. 룸메이트. 누구도 서로를 변화시키거나, 지배하거나, 무시하지 않는 생활이 우리 집 냉장고 속에 들어있었던 것이다. 집에 케첩이 있나, 하면서 자꾸 케첩을 사들이는 남편을 구박하지 않는 배려까지. 다음 주 퀴즈는 뭘까, 우리 집을 낯선 사람의 눈으로 한 번 둘러보았다. 남편을, 아이들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한 번 생각해보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것들의 이유를 알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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