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받았다. 1차 때는 남편이랑 같이 갔는데 이번에는 혼자 갔다. 우리가 같은 날, 같은 곳에서 백신을 맞을 수 없었던 이유는 우리가 정직해서였다. 백신을 맞기 위해 인터넷에 작성한 남편의 몸무게가 비만으로 분류되어 남편이 우선 접종 대상자가 된 것이다. 나를 흡연자로 바꿔 다시 등록하면 자신과 같은 시기에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남편에게 나는 뭐 이런 교양 없는 인간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그렇게 사소한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백신을 맞고 싶진 않다고 거짓말을 했다. 나는 백신 맞는 날짜를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싶었다. 백신의 부작용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별 일없이 집 안에서만 머무는 이 생활에 파격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랬더니 남편이 내 마음 못지않은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백신 부작용이 있을지 모르니까 나를 위해 자신이 먼저 맞고 어떻게 되는 지를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거기다 대고 나는 몸무게 줄여서 다시 등록해,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우리 둘이 백신을 맞고 동시에 뻗으면 아이들은 누가 돌보겠나, 하는 생각에 나는 서류상의 흡연자가, 의료계 종사자가, 환자가 되지 않고 오롯하게 나일 수 있었다.
장범준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백신을 맞으러 혼자 운전을 하고 가다가 신호에 걸렸을 때, 빈 조수석을 잠깐 쳐다봤는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 하나가 보고 싶어 졌다. 그 친구를 내 옆자리에 태우고 같이 쇼핑몰에 가고, 밥도 먹으러 가는 상상을 하다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조금 울었는데, 내가 오늘 네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친구한테 꼭 알려줘야겠다는 마음도 들길래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은 벌써 다 지나가버리고, 끝나버렸는데 이럴 때면 숱한 어제들이 어느 때나, 어디에나 있어 오늘이 단지 24시간이 아니라 평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긴 하루를 혼자 보내고 나면 매일매일 늘어나는 흰머리를 이해할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만날 수 있지, 내일, 평생, 내일모레, 평생, 평생. 30분간의 운전이 끝나고 나는 주차장에 차를 제대로 못 대고 약국으로 걸어 들어갔다. 보고 싶은 얼굴이 그곳에 있을 리 없다는 건 알고 있다.
남편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백신 메가 사이트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거기서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신분증 검사도 받지 않고 백신을 맞았다고 했다. 물론 인터넷으로 백신 맞을 장소와 시간을 예약하긴 했지만 약국에서 백신을 맞기 전에 의료보험증과 신분증 검사를 받고 각종 서류에 사인을 해야 했던 나와 비교하면 뭔가 허술했던 것 같다고 남편이 그랬다. 우리는 이것이 정부와 기업의 차이인가 했다. 캐나다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가스로 놀러 왔다가 백신을 맞고 돌아가기도 한다고 하고, 미국 병원에서는 버려질 백신이 아까워 병원 직원들이 병원 밖으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으라 권유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법, 규제, 통제, 국경, 계획, 예상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면서 어차피 목표는 낭비 없는 생존인가 싶었다.
예약 시간은 오전 9시 50분이었지만 나는 10시 30분이 다 되어서야 주사를 맞을 수 있었다. 약국 직원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친절한 탓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 여자에게 다가가 기다리기 힘들다고 이야기했으면 다른 일을 다 제쳐두고 나에게 먼저 주사를 놓아주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까지 생각하게 만드는 친절함이었다. 나는 지갑을 열어 여자가 건네 준 백신 접종 확인증을 운전면허증 뒤로 끼워 넣었다. 그리고 약국 밖을 나서면서 이제부터 또다시 어떻게 살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중얼중얼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 향이 느껴진 거야” 어차피 목표는 내가 아니잖아, 한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