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으로 집을 보러 다녀왔다. 9월이 되기 전에 우리의 물건과 우리와 생활이 머물 공간을 찾아야 한다. 꽤 오랜 세월 월세를 내면서 언제든지, 어디로든 우리가 원한다면 이 곳을 떠날 수 있다 생각하고, 말하면서 지내왔는데 막상 그래야 할 때가 다가오자 여기가 우리 집인데, 하는 마음이다. 아직 갈 데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오늘, 여기와 저기 사이, 지나온 날들과 다가올 날들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서 나는 앞으로 필요하지 않을 것을 버리고, 차마 버릴 수 없는 것으로만 상자를 채운다.
우리는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보스턴 외곽 지역에서 여섯 채의 집을 보았다. 부동산 앱으로 집의 평면도는 확인해보지도 않고 나는 아이들과 사진만 대충 훑어본 상태였다. 그래서 어떤 집을 둘러보면서 벽이 없을 거라 예상되는 곳곳마다 나를 가로막는 벽을 마주하고 당황하기도 했다. 사진은 언제나 실제보다 더 좋아 보이는 것이었다. 실망한 아이들에게 사진 찍는 사람이 일을 참 잘했네, 하면서 우리의 일상생활이, 우리의 찬란한 미래가 훤히 그려지는 집을 만나고 싶다는 나의 순진함이 의외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부동산 중개인에게 이 집은 별장 같네요, 이 집은 위아래가 뒤집힌 것 같아요, 하면서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안방 화장실이 유난히 큰 집이 있었다. 세면대 뒤로 커다란 거울이 벽을 전부 차지하고 있고 화장대로 쓸 공간과 곡선뿐인 의자가 두 개의 세면대 가운데 자리한, 백화점 화장실 같은 그런 화장실이었다. 욕조도 어른 세 명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우리는 전체적으로 이 집이 마음에 들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 딸아이가 쓰는 방보다 더 큰 화장실의 존재는 낭비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남의 집 앞에 서서 부동산 중개인과 그 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가 외출했다 돌아오는 집주인 가족을 만났다. 그 순간 우리가 마주한 세월을 거스르는 주인아줌마의 아름다움은 안방 화장실의 존재를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누가 시작한 화장실인가를 따져보면 주인아줌마의 빼어난 미모는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을 살 때 내가 그 집에 들어가 살면서 바꿀 수 없는 것을 잘 살펴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우리가 사고 싶은 집이, 살고 싶은 집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에 남편과 도대체 우리는 어떤 집을 찾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내가 생각지도 않은 것들을 꼼꼼히 살피고 따지는 남편 옆에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진다고 고백할 뻔했다. 대신 남편한테 여태까지 내가 너 취업 준비, 결혼식 준비, 대학원 준비, 집 사고팔고, 차 살 때마다 생각한 건데 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따져보지도 않고 청혼한 것 같아. 결혼을 차 사는 것보다 더 쉽게 생각한 거야,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따져본 걸 수도 있지,라고 해서 소름이 끼쳤다. 그러기엔 네가 나를 알아볼 방법이, 사람이 별로 없었어. 나는 이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앞으로 우리가 해나가야 할 일들을 남편에게 은근히 떠넘기려고 한다. 이 집에서 살려면 제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여야겠어요, 이 집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느껴져요, 여긴 천장이 낮아서 애들 키 크는데 방해가 되겠네요, 같은 소리나 하면서.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