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이 나는 몸으로 걸으면 뜨거운 물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귀도 먹먹하고 팔다리의 움직임이 느리고 우아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두통이 심장 박동에 맞춰 머릿속을 지끈거리면 내 머리 위로 건설 중인 수중도시를 마음에 그려볼 수 있었다. 몸의 온도를 숫자로 확인하지 않고도 어딘가 문제라고 짐작되는 상태로 나는 잠들기 전에 타이레놀을 삼켰다. 아무한테나 칭얼거리고 싶고, 아프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싶으면서 혼자 있고 싶은 마음으로, 옆에 누운 둘째의 손 하나를 내 이마에, 다른 손 하나는 아이 이마에다 올린 다음, 열, 정상을 번갈아 외쳤다. 신기해하는 아이의 손을 내 이마에서 떼어 내 뱃속에 넣었다. 열. 아이에게 의사 선생님 같다고 뜨거운 몸으로 진지하게 내가 한마디 하면 아이는 나중에 커서 의사가 될까, 생각해보는 중에 마른기침이 나왔다. 아이가 코로나 바이러스, 하면서 내 곁에서 떠나갔다. 그보다 더 멀리서 죽은 코로나 바이러스,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프면 잠들기가 쉽지 않다는 걸 자정이 넘어서야 깨닫고, 그때쯤 약 기운이 완벽하게 온몸을 돌았는지 열이 내려 나는 잠이 들었다.
아프지 않은 날 아침이면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고 호주머니를 뒤지듯 내 머릿속을 헤집어 오늘 하루는 어떤 기분으로 시작할 수 있나, 가늠해보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블라인드 틈새로 새어드는 햇빛을 피해 이불을 끌어안고 뒤척이다 눈을 뜨고 맨 처음 타이레놀을 떠올렸다. 아래층으로 술 취한 사람처럼 걸어내려 가 타이레놀을 찾아먹고 나는 거실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 위로 다시 누웠다. 아이들은 나의 배웅 없이 남편과 스쿨버스를 타러 나갔다. 어떤 아픔이어야 매일 계속되어도 무시하고 생활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다가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아, 젊지 않아 그런 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아침나절을 누워서 약이 잘 듣기만을 기다리다 밤잠보다 더 깊은 잠에 빠져들어 아이가 집에 돌아올 시간에 맞춰놓은 알람 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켰다. 몸은 잠으로 정신은 죽음으로 산다, 아니, 타이레놀.
세 번째 타이레놀을 끝으로 내 몸은 코로나 백신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나는 한시도 아프지 않았던 것처럼 다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복용하는 약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입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앓는 소리가 나오고, 밤에 잠이 오지 않아 괴로운 매일이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나의 미래일까, 하는 생각은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왜 우리 엄마 아빠는 나한테 아무 말이 없는 거지. 내가 묻지 않아서, 모르면 좋아서, 같은 밤과 낮에 살지 않으니까. 내가 가진 건 시간뿐인데 우리 사이에 없는 시간은 점점 더 사라지기만 하고 그러다 결국엔 잠으로, 죽음으로 모두 이 세상을 쉬게 되는 건가, 그것도 단 한숨에.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