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놀러 와. 언니네 식구들을 초대해놓고 언니가 사 가지고 올 쌀국수와 언니의 면기를 기다린다. 나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어떻게 집에 제대로 된 면기 하나 없냐고 기막혀하는 언니의 말에 나는 우리 집에 없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줄줄 이야기해줬다. 국수를 해 먹는 날이면 식구 중 누군가 한 사람은 그릇 대신 냄비를 써야 했다. 문명화가 덜 된 내 살림살이의 야만성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는 가족이 있어 더욱 야만적인 우리끼리의 문명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언니는 우리 집 부엌을 한 번 스윽 둘러보더니 포장해 온 쌀국수를 풀어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처음에는 언니 옆에 서 있었는데 어느새 뒷걸음질 쳐버린 나는 언니의 뒷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꼼꼼하게 포장된 날고기, 숙주나물, 할라피뇨, 민트가 풀어져 접시로 올라가고, No cook이라고 주문된 쌀국수가 뜨거운 물에 데쳐져 면기로 옮겨지고,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커다란 냄비 속에서 고기 국물이 끓었다. 한동안 적막했던 부엌이 활기를 띠며 온 집안에 온기와 향기를 내뿜었다. 부엌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기다리는 곳이었다.
내 주먹보다 작은 국자를 치켜들고 언니는 자신의 국자는 아이 머리통만 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큰 국자가 왜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언니가 국자로 국물을 뜨면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정확히 열 번이었다. 국자 쓸 일이 있으면 나는 옷소매를 길게 빼서 손을 데지 않게 보호한 다음 그릇에 그냥 붓는다고 말할까 하다가 언니한테 국자로 얻어맞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동생이랑 둘이 산 시간까지 15년, 그 긴 시간 살림을 하면서 접시 하나 내 손으로 사본 적 없고, 머그잔만 자꾸 사들인 걸 보면 국자로 한 대 맞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긴 했다. 머그잔을 간장 종지로 쓰는 범죄가 언니 부엌에서는 벌어지지 않겠지, 생각하면서.
살던 동네 안에서 급히 이사를 하게 된 언니가 짐 정리를 하면서 이사를 도와주러 간 남편 손에 면기 다섯 개를 챙겨주었다. 싱크대 위에 빈 그릇을 줄 세워놓고 한참을 바라보다 비빔냉면이 먹고 싶어 졌다. 작은 냄비에 물을 올리고 계란을 삶아야지, 큰 냄비에 올린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면을 넣어야지, 면이 다 삶아지기 전에 채반을 꺼내놔야지, 양념장도 만들어야지, 냉장고를 뒤져서 아무 채소나 있으면 썰어놔야지, 생각만 했다. 빈 그릇은 이렇게 바라만 봐도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물을 올리긴 올렸는데 그 물로 커피를 내렸다. 뜨거운 물이 남아서 녹차를 우렸다. 난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추운 거야, 면기 다섯 개를 착착 소리가 나게 겹쳐 찬장 속에 집어넣었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