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를 등지고 있는 일인용 소파에 앉아 극세사 이불을 덮고 책을 읽는다. 소파 옆에 놓인 소파보다 키가 낮은 서랍장 위에는 얼마 전에 사들인 책들과 책의 내용이 갑자기 떠올라 다시 읽으려고 책장에서 꺼내놓은 책들이 쌓여있다. 그렇게 책 위로 책, 책 옆의 책으로 모인 책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가끔 바라보면서 나는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전자책을 읽는다. 마음을 주는 순서는 내 것이 아닌 것에 먼저, 나의 소유는 영원해서 먼지가 쌓인다.
아는 언니의 성인이 다 된 딸은 The Glass Castle을 읽고 홈리스에 대한 자신의 편견이나 연민에는 그런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유지하는 홈리스도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홈리스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수도 있었지만 스무 살이 넘은 딸과의 대화의 느낌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식에게 배우는 게 부끄럽지 않고, 어른이 되어가는 자식에 감탄하면서 우리도 점점 예전과는 다른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은 순간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엄마이고 딸인지와는 상관없이.
도서관에서 Jeannette Wall의 회고록, The Glass Castle을 빌렸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이해되지 않는 방식으로 굴러가는 가정은 조부모와 부모의 문제, 부모와 사회의 문제, 부모 스스로의 문제, 부모 사이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노출하고 그 결과 아이들이 고생한다,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엄마, 아빠 이 두 어른만으로 고립된 가정은 위험하다. 세상에 부모 말고도 어른이 있다는 걸, 더 좋은 어른이 많다는 걸 아이들이 실제로 경험해야 한다. 부모는 사랑이었지만 그래서 어려웠고, 자식은 불행했지만 불행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고 말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여섯 살짜리 아들의 방해 속에 책 한 권을 겨우 다 읽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내가 책 읽기에 중독되었다느니 자신보다 책을 더 사랑한다느니 하는 소리였다.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반복해서 말하다가 결국에는 아이에게 그만 좀 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아이는 나를 향한 무한대의 사랑이 모조리 사라졌다고 선언하고 내 곁에서 떠나갔다. 그럴 수 없는 일이라며 나는 아이를 쫒아 가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Okay, it changes love by one, but it doesn’t make me happy. 애절한 나의 포옹은 사랑 하나를 회복했지만 아들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었다.
아들: Everything in the world is imagination.
나: 그러면 내가 널 사랑하는 건 상상이야, 사실이야?
아들: That’s imagination, too. But there is a reason why you love me.
나: 그 이유가 뭔데?
아들: Because I am your son. There is no mom who doesn’t love her own son.
나: ㅠㅠ
아들: Why are you crying? Cause I am beautiful?
아빠가 유리성 설계도를 그려놓고 그걸 완성할 미래를 꿈꾸기 보다 아이의 어린 시절이 어른 설계도를 그리는 일이라 여기며 하루하루 성실히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랬으면 딸이 The Glass Castle 을 책으로 지을 일이 없었겠지만.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