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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Dec 16. 2021

궁상과 동심

   시작 버튼이 눌리지 않는 식기세척기다만 전 주인이 쓰던, 고장 난 가전제품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손가락을 놀려 그의 부품을 바꾸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주인님, 프랑켄슈타인, 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그리하여 나는 물이 새는 식기세척기의 문을 열고 이번에는 무엇을 바꿔주면 좋을지를 궁리했다. 일단 식기세척기 문 테두리를 둘러싼 새까만 고무씰을 손으로 더듬어보니 그건 흠없이 탄력적으로 제 자리에 붙어있었다. 문제는 식기세척기 도어 래치에 있는 듯했다, 아니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문을 닫으면 물이 새는 쪽이 조금 튀어나오기 때문이었다.

   Mdb7749 sbq2가 도어 래치의 이름이었다. $50이 그것의 가치였다. 이번에는 50불로 1000불을 아끼는 걸까, 하는 생각에 빠지지 않고 바로 Mdb7749 sbq2에게 우리 집 주소를 적어 주었다. 그리고 홀로 하얗게 빛나는 식기세척기의 스위치 보드를 바라보았다. 식기세척기의 원래 색이 저랬을까, 아니면 내가 부품 주문을 잘못한 걸까, 정확하게 알아내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그러면 부엌 캐비닛도 처음에는. 아름답지 않아. 그러나 자주 보면 익숙해질 것이므로 괜찮다. 주인님, 프랑켄슈타인! 또 고장 나면 안 돼, 복수는 안된다고.  

  인터넷으로 부품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손 설거지를 했다. 한 때는 식기세척기의 성능을 의심해 기계보다 우월한 나의 맨 손으로 설거지를 하며 살았다. 그렇게 부엌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던 그 시간을 모두 합치면 아이를 하나 더 낳고도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손수 설거지하길 잘했군, 잘했어. 우편함에서 도어 래치가 든 갈색 봉투를 꺼내 들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나는 처음과 그다음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모든 처음은 나를 바꾸지. 그다음은 바뀐 나를 뛰어넘는 예전 그대로의 내가 세상을 망쳐.

  기계 해체에 희열을 느끼며 나는 식기세척기의 문을 열어 긴 나사, 짧은 나사 모두를 풀고 도어 래치를 떼어냈다. 앗! 왜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르게 생긴 거지? 하지만 이제 와서 설명이나 지시 따위 찾지 않아. 나는 속을 드러낸 식기세척기 안을 피아노 연주하듯 손가락으로 훑으며 그것을 내 모든 감각을 동원해 이해해보려 했다. 전기 오를 일은 전혀 없죠. 전기 차단 스위치를 진작에 내렸잖아요. 방에서 일을 하고 있던 남편이 부엌으로 걸어 나와 커피를 내리며 식기세척기에 상체를 잡아먹히고 남은 내 엉덩이를 향해 나중에 내가 할게, 했다. 싫어.      

  도어 래치를 바꿔 끼웠다. 그 과정에서 스위치 보드의 어딘가 부러졌다. 강력본드로 붙여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본전 생각이 났다. 주인님, 주인님. 부러진 곳을 부러지지 않았다고 여기며 나는 식기세척기 조립을 마쳤다. 염치없지만 20개월만 버텨줘. 20개월인 이유는 그게 내가 너한테 한 달에 10불 정도는 투자할 수 있다는 뜻이야. 식기세척기는 아직까지 아무 탈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가끔 그 부러진 데는 어찌 되었나 나사를 전부 풀어 식기세척기 속을 활짝 열어보고 싶은 내 마음이 문제라면 문제겠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냉장고 안에서 똑 똑 똑 우아악 문 두드리는 소리와 발로 문을 차는 소리가 번갈아가며 나고 있다. 언니 냉장고 뭐가 좋아요? LG, 삼성, 그래 이제 정말 K-가전을 마련하는 거야!

   우리 집 냉장고 브랜드와 제품번호로 구글 검색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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