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결심하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 분연히 몸을 일으킨 지도 거의 일 년이 다 되었다. 그 세월 동안 나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두 번의 하프 마라톤 완주와 한 번의 풀 마라톤 완주. 이 모든 완주는 달리기를 시작하고 6개월 만에 성취한 변화이자 한계였다. 평생토록 가능한 상태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리고 바라온 나 자신과의 결코 영원하지 않은 단절에 관한. 그러니까 나는 매일 어느 일정 시간 동안만은 몸으로부터 달아나기만 하는 정신, 제정신이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운동 중인 몸이 주는 환희와 고통 속으로 몰두하는 본능이었다는 말이다.
달리기의 묘미는 집 밖으로 나서기 직전까지 뛸까 말까 집요하게 고민을 그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이건 마치 점점 다가오는 여행 날짜에도 방바닥에 무슨 덫처럼 입 벌리고 텅 빈 속을 내보이는 캐리어를 물건으로 채워 닫지 않고, 지속적으로 바라보며, 불안해하는 심리와도 닮아있달까. 무엇보다 원하고, 필요하지만 그만큼 귀찮고, 또 궁지에 몰리면 무언가 견딜만하게 마술적으로 마무리되는. 그래서 인생을 질리지도 않고 마라톤에, 여행에, 요리에, 세차에, 독서에, 연주에, 동물원에, 연애에, 하수구에, 발바닥에 비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운동화 끈을 고쳐 맨 다음 현관문을 열고 밖에 나가 달리기 시작하면 그만 뛰고 집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도 멈춰 서지 않고 전진, 일정한 속도로 전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이건 달리기라는 활동 자체가 인간에게 선사하는 묘한 자비와 인내일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럴 땐 나의 몸이 정신을 강아지나 고양이를 어르는 듯해 그 따스함에 몸을 맡기고 아니, 정신이 팔려 10분만, 다시 10분 더 하면서 더 이상 집에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생각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처음 한 두 달은 좋아하는 노래로 시간을 재면서 뛰기도 하고 오디오 성경을 들으며 거룩하게 온몸으로 우는 듯 여기저기 땀방울을 무수히 맺어보기도 하였으나 이젠 아무래도 대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 숨소리와 발소리를 통제해 보는 달인 행세를 즐긴다.
그리하여 내일은 나의 무려 세 번째 하프마라톤 대회 참가날. 목표는 새로 산 운동화를 신고 두 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나 일 년 동안 경험한 나의 변화와 한계 사이에는 달리기 코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도저히 남기지 않고는 못 베기는, 같이 뛰는 처음 본, 다시 봐도 알아보지 못할 사람들의 차림새와 존재 그 자체에 홀딱 반해 한 눈 파는 무질서한 내가 있으므로. 그 무질서를 바로잡는 일은 한평생, 두 평생을 갖다 바쳐도 모자랄 테니 영원히 지치지 않고 반복될 인생, 달리기, 독서, 발바닥의 목표는 궤도이탈의 모양새로 덕지덕지 완성할 완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