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뒤면 뛰어야 할 50km 레이스 준비는,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 겐가. 계획을 세우고 제대로 지키기는 성미에 맞질 않아 거의 매일 마음 가는 대로 거리를 늘렸다, 줄였다, 온화하지 않은 날씨를 핑계 삼아, 뛰었다, 안 뛰었다, 한다. 레이스를 끝까지 뛰어서 마칠 수 없다면 걸어서라도 결승선을 넘겠다는 여유와 기개로 말이다. 아니, 사실은 이번 달리기가 성에 차지 않으면 내년에 다시 또 달리면 되니까 스스로에게 이토록 너그럽지.
단 한 번의 달리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나날을 달려야 하는지는,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고 2년 동안 서서히 거리를 늘려가며 참가한 5km, 하프 마라톤, 풀코스 마라톤 대회로 체험했다. 달리기 대회 이전의 달리기는 모두 내게 포기 없는 대회 완주를 위한 준비. 이렇게 철저한 훈련 계획 없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대회 완주는 가능하다. 감히 훈련이라 부를 수도 없는 풀코스 마라톤 준비에도 네 번의 풀코스 마라톤 대회 전부 30km 지점까진 달리다가 그 이후로 걷다 쉬다 좀비 같은 움직임으로 완주를 하긴 했으니까. 결승선을 지나자마자 아, 다음엔 더 잘 달릴 수 있을 것 같아, 꼭 다시 새로 달리고 싶다, 집에 가면 다음 마라톤을 찾아서 등록해야겠어, 속으로 되뇌며, 이런 미친, 말이다.
올봄 42.195 km 레이스 출발선에 선 내 마음은 비장했다. 이번에도 역시 30km 지점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면 가는 세월을 부지런히 입는 정직한 몸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풀코스를 달리지 말자 다짐한 이유로.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천천히, 봄비를 머금은 하늘 아래, 걷거나 쉬지 않고 내내 달려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러므로 이제 더욱 먼 거리. 결승선 주변 인도에 주저앉아 아스팔트 위로 점점이 떨어지는 빗방울에 시선을 떨군 채 더 머나먼, 온갖 통증으로 온몸을 다 녹여버릴 형벌과도 같은 거리를 바라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반복, 성취, 중독이 몸과 마음을 아프게 순환하는 가운데 50km 레이스 참가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달리는 거리를 늘릴수록 식욕이 줄고 있다. 공복에 달리기를 마치고 더는 견딜 수 없이 허기질 때까지 기다렸다 허겁지겁 식사를 해치우는 그 다급함으로부터 벗어나니 식물적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가만히 잎사귀를 바라보다 때가 되면 화분에 물을 주듯 내게 뭐라도 먹여야 한다는 점에서. 이 상태는 신호가 끊긴, 배터리 나간, 으로도 표현해 볼 수 있다. 장거리 달리기를 준비 중이라면 지켜야 할 식단이 있다는 걸 알면서, 이럴 수가. 그런데 아무리 이리 성의 없이 준비한다 해도 제가 달리다 멈춰 서서 그 자리에 깊이 뿌리내릴 한 그루 나무가 될 리는 없을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