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날씨와 음악

by 준혜이

이번 주말 눈보라가 휘몰아칠 거라는 일기예보의 기세에 떠밀려 금요일 아침 일찍 장을 보러 트레이더 조로 차를 몰았다. 평소와 다르게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가게 선반 위에 놓인 빵과 물을 카트에 옮겨 담았다. 그렇게 내 주변 모든 방향에서 사람 손을 타고 식료품이 분주히 오르내리는 활기에 내 불안을 더했다. 최악의 사태를 예상해 최선으로 대비하는 사람들이 내뿜는 묘한 기운 속에서 서로 갈 길을 내주며 가다 서다 오랜 시간을 들여 장을 봤다. 이 상황과 행동으로부터 피치 못할 소속감을, 먹고살아야지, 느끼면서 말이다.

폭설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된 가운데 맑은 하늘이 의심쩍어 자꾸만 올려다보게 되는 토요일. 일정 취소 없이 예정대로 고등학생이 다니는 음악학원 연례 연주회가 동네 교회에서 열렸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얼굴을 본다. 눈썹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눈이 커졌다가 작아지고 사라졌다 나타난다. 음악이 사람 얼굴로 짓는 멜로디를 보고 듣는다. 악기 위에서, 무대 위에서 연주자의 손가락이 그들의 발이, 움직인다, 걸어간다, 도망간다, 떨린다, 운다. 악기에 구속된 몸과 음으로 자유로운 몸의 운동을 음미한다. 사람도, 악기도, 음악도 아닌 어떤 상태로 존재하는 그들이 아름다우면서 위험하다고도 느낀다.

일요일이 되자 드디어 쉴 새 없이 눈이 내린다. 달갑지 않은 소식을 기다리는 마음도 간절했던 모양인지 월요일은 휴교라는 학교 이메일에 마음 놓고 커피를 마시면서 창 밖을 바라본다. 잠시 눈발이 잦아든 틈을 타 홀린 듯이 두꺼운 외투를 챙겨 입고 부츠를 찾아 신고 나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 위로 발자국을 새긴다. 새하얀 입김을 숨소리와 함께 내뿜으며 이 세상에 내 체온을 선보인다. 거역할 수 없는 풍경 안에 있는 그대로 포함된 채 사람으로 살아있음을 연주하는 이 장면에서 흐를 자막은 아니, 핫초코 사는 걸 깜빡 잊었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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