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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떻게 변하는가

내가 아는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by 잊드라 Feb 20. 2025


버블 200일이 넘었다. 

(버블 = 팬과 연예인이 채팅을 할 수 있는 시스템. 팬 입장에서는 1:1 메시지처럼 보인다.)

일방적인 사랑이지만 100일, 200일 이라니 나름 의미 있게 다가온다. 

상대방은 모르고 나만 아는 기념일이어도 버블 어플은 배경화면에 폭죽을 터뜨리며 축하를 해주었다. 


가끔 이준호에게 입덕한 내가 

내가 아는 내가 맞나? 

하는 생경한 느낌이 들곤 한다. 


이게 나인가? 

이준호 보면서 배시시 웃고 있는 게 나인가?

하고 제 3자의 입장에서 나를 관망하는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을 보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었다.

아이돌도 템포 빠른 댄스음악도 다 관심 없고 듣는 음악은 디즈니 ost와 가슴 절절한 발라드뿐이었다. 

미니멀을 추구하며 검소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했었다. 

쓸데없는 물건을 늘리지 않는 것이 소비 신조였다. 

이런 내가 '내가 알던 나'였다.  


입덕한 나는 

지나간 이준호 드라마를 보고 

10년도 전에 나온 이준호 예능을 보러 OTT를 구독하고 

이준호와 투피엠이라는 아이돌의 흔적을 따라다니며 밤을 지새우고 

템포 빠른 이준호 음악을 들으며 덩실덩실한다. 

쿠팡도 구독 안 하는 사람이 버블을 구독하기 시작했고 

펭펭이 새로운 버전을 구입하고 콘서트 굿즈에 나온 LJH로고가 새겨진 가방을 장바구니에 넣는다.(펭펭이=이준호 캐릭터 인형) 

이준호가 광고하는 써본 적 없는 종류의 화장품을 구입했고 사은품으로 딸려오는 이준호 포토카드에 기뻐한 이후로 아직도 제대로 된 화장품 사용법을 모른다. 

이준호 시즌그리팅에 포함된 달력이 있는데도 이준호 얼굴이 있는 덕메님표 달력을 또 산다. 

집에서 1~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 콘서트장을 가면서 굳이 덕메님들과 숙박을 한다. 

이준호와 사진을 찍겠다며 머리를 곱게 말고 포토이즘으로 달려간다.  


내가 아는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이준호 포토카드를 샀더니 컨실러를 주더라이준호 포토카드를 샀더니 컨실러를 주더라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다른 사람이 된다. 

호르몬으로 인해 끓어오르는 한시적인 열정을 그 사람의 본모습이라고 혼동해서 상처받은 적도 있었다.

오빠 안 그랬잖아. 그런 사람 아니잖아.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런 류의 흔한 상처말이다. 

몇 번의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을 지나며 절로 깨닫게 된다. 


아 그것은 호르몬의 영향이었구나.  

그는 원래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는데 한순간 사랑에 빠져서 

내게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 마냥 그토록 헌신적이고 열정적이고 관대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변했던 거였구나. 

지금의 모습이 원래의 그였구나. 

한바탕 사랑 호르몬이 지나간 이후에 가슴 쓰리게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나를 보면 호르몬으로 인해 사랑에 빠진 그 어떤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시적인 열정으로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것을 하고 평소라면 허용하지 않았을 것들을 허용하고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고 기분이 좋고 힘든 일이 희석된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있다. 


이 사랑이 호르몬의 영향으로 금세 식어버릴 열정인지, 오래오래 잔잔하게 가져갈 애정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겠지. 


처음 덕통사고 당하고 입덕한 내가 당황스러워서 빨리 정신 차리고 싶었던 만큼(그러나 정신 차리지 못했다)

탈덕하게 된 이후 지금 누리는 이 사랑과 설렘과 에너지를 잃을까 봐 두렵기도 하다. 


아무튼 오늘은 

여전히 사랑호르몬에 지배당하고 있는

입덕 10개월 차, 그리고 버블 237일이었다. 




-2024년 10월 10일에 쓴 글을 수정하여 썼습니다. 

이 글을 쓸 때가 버블 105일 차였는데 그로부터 100일이 또 지났으나 사랑호르몬은 여전하고 오히려 사랑이 깊어졌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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