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에게 입덕 11개월차.
이제는 덕후인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사랑하고 북돋아주며 살기로 했지만 입덕 초반에는 연예인에게 빠져 시간과 돈과 열정을 쏟고 있는 나를 깨달을 때마다 현타가 오곤 했다.
언어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재테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직업적인 전문성을 키우는 것도 아니고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가, 내가! 연예인에게 빠져서 이 자리에 서있다니.
이준호를 처음 현장에서 본 것은 2024년 7월 24일 [다시 만나는 날] 무대인사 때였다.
몇 달간 스마트폰 창을 통해서만 바라보던 이준호의 실물을 처음으로 보는 날이었다.
CGV영등포 1관 358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 중 내 자리는 맨 뒤자리였다.
그저 한 공간에 있기만 해도 좋다고 기를 쓰고 예매했던 자리는 생각보다 이준호와 많이 멀었고 그가 아주 작게 보였다.
현실감이 없었다.
자꾸 눈을 꿈뻑꿈뻑했다.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 이준호인가요?
그동안 몇 날 며칠 밤을 지새우며 바라보던 그 이준호가 지금 눈앞에 있는 건가요?
한 생명체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뭐랄까.
정말 신기했다.
이준호도 사람인데.
그런데 나도 사람이야.
그도 그냥 사람인데 어쩜 이렇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까.
왜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이준호에게 미쳐있을까.
그런데 나도 그중 한 명이야.
너무 재밌어, 말 한마디만 해도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아, 그가 웃으면 아주 까르륵 웃겨 죽겄어.
뭘까.
나도 인간이잖아. 그도 인간이잖아.
어떤 점이 인간을 이렇게 매료시킬 수 있는 걸까.
나도 그중 한 사람이지만 이준호가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다.
짧은 시간에 이런 생각을 했다.
진심으로 이준호가 부러웠다.
수많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의 매력이, 먼 지역에서 휴가를 내고 달려오게 하는 열정의 근원이 된다는 사실이, 그가 숨 쉬고 말하고 웃는 모든 순간순간이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의 간절함의 결정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는 나라는 사람을 모르는데 내가 이토록 온 마음 온몸 다해 그를 보러 왔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나의 존재도 모르는 사람을 짝사랑하고 있다니.
그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인데.
종종 정신을 차릴 때마다 내가 같은 인간에게 미쳐 돈과 시간을 후루룩 쓰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현타가 왔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준호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이것은 약간의 주문과도 같은 것이다.
평생 자기계발하며 사는 것을 덕목이라 생각했던, 휴가 때에 쉬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강박적으로 살아온 한 여자의 주문이다.
그가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위인이나 천사, 요정 등의 새로운 존재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다만 너무 깊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저 빨리 주문을 외우고 다시 나의 최애에게 빠져들어야 한다.)
이준호가 네파 팬사인회를 진행할 때 저 멀리에서 환호하는 군중 중에 한 사람으로 서있으며 생각했다.
이준호는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읊조리다 보면 놀랍게도 마음이 차분해진다.
주문을 외운 지 몇 개월이 지났다.
그를 알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짧은 주문에 설득력이 더해진다.
파고파고 팔수록 놀랍고 늘 새롭게 반하게 하는 이준호.
노래, 춤, 작사, 작곡, 연기, 글쓰기, 언어, 심지어 시구까지.
이준호는 진짜 왜 이렇게 다 잘하는 건지.
뭐 빠지는 게 있어야 인간적인데.
https://youtu.be/7mueJujKrZA?si=zw3sTEqJM6E59yl_
지난 주말, 이준호의 2025년 Midnight Sun 팬콘서트 투어가 종료되었다.
투어 중 발목부상에도 불구하고 그가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있다.
그리고 그는 최고를 만들어 냈다.
아무래도...
이건 사람의 경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