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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ho Jun 28. 2018

7전 8기

한국 진출기 5탄

2018년 6월 27일. 러시아 월드컵 대한민국 vs 독일의 3차전은 역사에 남는 경기였다. 어제의 흥분이 아직도 가라앉질 않는다. 그들은 앞선 두 번의 실패와 좌절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1프로의 희망을 잡기 위해 죽을 듯이 뛰었다. 정말 보는 내내 감동했고, 마지막에 함께 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비단 비즈니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어제 함께 알았다. 

 사실 어제 내 개인적으로는 축구의 감동이 있기 전에 비즈니스적으로 굉장히 큰 기쁨이 있는 하루였다. 정말 축구 때문에 나 자신한테도 가려질 정도였지만, 사실 어제 우리는 단일 프로젝트로는 사상 최대의 매출인 부산의 미디어 랜드마크를 수주했다. 어제 아침 기차로 나와 이 프로젝트를 준비한 우리 팀 멤버와 함께 부산에 입찰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갔다. 사실 요즘 내가 신사업 일에 싱가포르 제안에 너무 바쁘다 보니 국내 일을 조금 신경을 많이 못썼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너무 큰 프로젝트였고 대표님 지시사항으로 반드시 수주를 해야 하는 사업이라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제안서를 검토하고 수정했고, 피티를 준비했다. 하지만 준비를 하면서도 불안감은 공존했다. 그 이유는 예전 브런치에도 썼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도 국내에서는 이런 큰 프로젝트를 수주를 못했다. 해외에서는 그래도 곧잘 승률이 좋았는데, 국내는 정말이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사실 최근에도 브런치에는 못 적었지만, 국내 최대 공사에 들어가는 랜드마크 프로젝트 입찰을 준비했었다. 정말 많은 시간을 들였고, 국내외 아티스트들을 직접 발로 뛰며 섭외하며, 그 어느 때보다 탄탄하 게 준비했다. 심지어 여기 글로는 다 표현 못하지만 할짓못할지 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개 제안 입찰자 중에 3등으로 마감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 2등이나 3등이나 12등이나 똑같다. 알고 보니 우리보다 더더 못할 짓을 많이 한 업체가 됐다는 내부 정보를 들었을 뿐이다. 이렇게 난 한국에서는 정상적인 영업 방식으로는 절대 대형 사업은 못하겠다고 좌절했고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거기다가 이번 부산 랜드마크 프로젝트는 정말 딱 제안서와 피티 준비만 했다. 그 어떤 내부 영업이나 못할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온갖 아이디어를 다 짜내어 남들이 해보지 않은 것들을 넣었고, 차별화 포인트를 확실히 주었다. 말 그대로 제안서에 더 힘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전날 밤에도 피티 연습을 했고, 부산까지 가는 KTX 안에서도 프레젠테이션 상황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준비를 했다. 현장에 도착했고, 경쟁업체들이 몇몇 함께 모여 앉았다. 우리가 발표 첫 번째로 정해졌는데, 여기서도 또 한 번의 비즈니스 전략이 있었다. 철판 두꺼운 우리 이사님이 각 경쟁자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를 하며 명함을 주고받았다. 피티 발표 30분 전이었는데, 경쟁사들을 재빨리 검색하여 파악한 뒤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을 분석한 후 그들의 Pain point를 피티 첫머리와 마무리에 집어넣었다. 쉽게 말해서 졸라 깠다 ㅋ. 물론 경쟁사 이름을 말하며 깐 게 아니라 그들이 내세울만한 것들을 예측 한 뒤 그것들이 여기와는 맞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다. 첫 피티 때부터 프레임을 심사위원들 머릿속에 심어준 것이다. 이것은 반칙이 아니다. 정당한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전략이다. 비즈니스는 전쟁이다. 그렇게 피티 발표를 잘 마쳤다. 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다 해서 후련은 했다. 질문들도 많이 들어왔지만 적절하게 대처한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웠던 부분은 발표시간이 15분 질의응답이 10분이었는데, 내가 발표를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진행관이 실수로 눌러놓는 바람에 1분을 까먹었다. 그래서 굉장히 바트게 발표를 한 것이 못내 아쉬워서 못한 얘기가 하나 있었는데, 질문들을 받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도 적절하게 섞어서 함께 답했다. 그렇게 마치고 부산역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정말 잘 마쳤는데.. 잘될까.. 또 물먹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는 당일 우선협상대상자에게만 전화가 간다고 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KTX 안에서 우리 세명은 긴장하면서 갈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이니 6시 전에는 연락을 줄 것 같은데 하면서... 시간은 흘러갔고.. 4시 40분.. 적막한 KTX에 전화벨이 울렸다. 우리 팀원이 연락책이라 받았는데 발신자 번호가 051.. 부산이었다. 긴장되며 옆에서 이사님과 나는 팀원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아.. 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요?" 떨리는 음성으로 내뱉은 우리 팀원의 이 말이 정말 적막한 KTX 안에서 소리는 못 지르고 몸짓 발짓 손짓 다 부리며 환호했다. 세 명 다 얼싸안고 환호했다. 아 정말 어제의 그 감동은 축구만큼 기쁘고 소름 끼쳤다. 정말 국내 대형 프로젝트도 아무런 허들 없이 오직 실력만으로도 되는구나 라는 깨달음.. 그리고 행복 안도 등등.. 요즘 회사 영업이 잘 안되어 조금 우울했었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작업해준 다른 회사 식구들에 대한 고마움 등.. 수많은 감정들이 와서 서울로 오는 기차 안에서 정말 피곤했지만 흥분되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사실 나도 국내에서는 이런 큰 프로젝트를 중소기업이 실력만 가지고는 가져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계속 문을 두들기다 보니 열리는 곳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나라 축구가 했듯이 나도 할 수 있고 당신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그래도 살기 좋은 나라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있다. 스포츠든 비즈니스든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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