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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d Enabler Feb 13. 2022

12. 사소한 접촉이 진심이 되기까지

얼마 전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에게 아침마다 하는 리추얼(Ritual)이 있나요?

질문받고 생각해보니, 그게 나의 리추얼이야!라고 정의하진 않았지만, 난 몇 가지를 반복적으로 으레 하고 있긴 했다.

따뜻한 물 한잔 마시기, 비타민 가루 먹기, 아이 안경 닦아두기 등등... 그리고 아이의 다리 주무르기.


나의 출근 준비를 마치고, 아이의 아침 준비 몇 가지를 끝내면, 나는 자고 있는 아이에게로 가 다리를 주무른다.

무릎 꼭꼭, 종아리, 발, 다섯 발가락을 주무르다 보면 매번 '아이고 언제 이렇게 컸을까' 싶기도 하면서, 여전히 작다면 작은 10살의 발가락을 바라보곤 한다.

조용히 그렇게 다리를 3-4분 주무르고 있으면, 자고 있는 아이의 따스한 체온이 나에게 스르륵 전해오곤 한다.


처음 하게 된 건, 어느 날 어머니께서 TV의 사연을 보시고 건넨 말 때문이었다.

 "어제 어떤 청년이 나왔는데 키도 크고 건실했는데, 다리가 아주 곧고 멋졌어. 그 사람 아버지가 듣지를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아들의 다리가 곧게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 매일 주물러주었다. 클 때까지 말이야. 그걸 그 청년은 잊을 수가 없다더라."


그때는 아이의 키가 작아서, 청년의 키가 훌쩍 크고 다리가 곧다는 말에 그렇게 하면 효과가 있으려나 싶어 시도했었다.

그게 4년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니 그 5분 일의 나의 분명한 리추얼이긴 하다.


누군가가 효과가 있느냐 물으면, '키는 모르겠고, 다리는 곧은 것 같다'라고 얘기해 줄 수는 있겠다.

이제는 하면서 진화하여, 다리를 몇 분 주무르고 나면 팔도 슥슥 주물러주고, 고사리 손도 마지작 거려본다. 그러고 있으면 아이도 슬슬 눈을 뜨는 것이, 언제부턴가 주무르는 신호가 '일어날 시간이군'이라고 생각이 되는 모양이었다.


반쯤 잠에 깬 아이에게 기분 좋은 장난을 살짝 치기도 하고, 볼에 뽀뽀를 하거나, 사랑한다 라는 말을 하면 아이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잠에서 깬다.


그것 역시 생각 없는 단순한 시도였는데, 아이가 눈을 뜨며 맞이하는 즐거움을 보고 난 후에는 여러 가지 우스운 방법을 쓰기도 했다.


멋모르고 시작한 이 일은 시간이 지나고 축적이 되면서, 생각보다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이에게 건네는 아침인사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어나라! 학교 가야지!'라고 깨우는 말보다, 동일한 희망의 행동 결과임에도 전달되어지 언어화 될 수 없는 다른 것들이 종합 선물세트처럼 들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참 사소한 일상 속의 일인데, 그 일이 어떤 면으로 상대에게 그리고 나에게 중요한 것을 줄 때가 있다.




나는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 직원에게도
"좋은 아침이에요 OO 씨" 하고 인사를 건네고 있습니다. 그 직원은 분명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겠지요.
인사의 앞이나 뒤에 이름 붙이기는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인사 방식입니다.

- '좋은 감각은 필요합니다.' 중에서,  마쓰우라 야타로 지음


나도 출근할 때 인사를 한다. "안녕!" " 안녕하세요!"를 하거나 그날따라 내 기분이 좀 상쾌하다 치면 "좋은 아침!"이라고 하곤 한다.


근데 '좋은 아침이에요.  OO 씨'란 글귀는 내 마음속에 뭔가를 남겼다. 따스하면서도 나를 부르는 그 한마디가 주는 느낌이 뭘까?


회사에 앉아 출근해서 앉아 있노라면, 대뜸 동료가 다가와 '어제 그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면,,,' '오늘 그걸 좀 해야 하는데...'라고 시작할 때가 있다.

그럼 속으로 '인사 좀 하고 얘기하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행동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뜨끔도 느끼면서...


어차피 하루는 일어나고, 나는 그 시간을 살아가고 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작은 사소한 일들이 있다.


 아침에 아이를 깨우거나, 출근해서 동료에게 인사하거나, 어떤 전화를 받거나, 식당에서 밥먹고 나올때도...그 시간의 사소함을 거창함으로(거창하다 라는 말이 참 거창하지만^^) 만들 수 있는 건, 많은 노력과 시간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5분 일 수도, 단 1분 일 수도 아님 단 5초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과  '그것을 의식적이지만 자연스레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다리 주무르기 내가 아이에게 전하는 아침인사이기도 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드님!'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지만 이제는 하루의 5분이 가벼운 일보다는 중요한 일이 되었다. 

나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우습게도 참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


무엇인가 거창한 말이나 행동은 아니지만, '나는 늘 사랑받는구나', '나의 아침은 참 즐거워', '난 엄마에게 중요한 사람이야'라는 메시지가 아이에게 전달되기를 희망한다.

매일 아이의 다리를 주무르며 아이와 나의 시간을 돌아보고, '아... 언제까지 내가 이 아이의 다리를 주무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언젠가 아이가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 나는 이 리추얼을 멈출 것이다. 그때까지 충분히, 아주 행복하게 내가 만들 수 있는 이 시간을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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