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쯤인가, '이유 있어요. 불만 있어요.'를 홀로 키득되면서 재밌게 읽을 때만 해도, '독특하네 혹은 엉뚱하네'라는 생각이 들던 책이었다. 작년 겨울 12월에 동네 서점을 방문해서 동일 작가의 다른 책을 우연히 본 아이는 '와! 이 작가 우리 집에 책 있는데!'라며 알은체를 했다.
자신이 본 책만을 판매하는 서점 사장님은 '이 책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야' 라며,
'있으려나 서점'을 추천했다. 서점에서 돌아오면서 아이의 가슴에 들린 책들은 아이에게 작은 행복한 기억을 남겨주었고, 집에서 나와 읽은 책 내용에 기쁨은 배가 됐다.
이번 읽기가 조금은 달랐던 것은 그 책이 나에게도 꽤 색다른 인상을 남겼던 점이다.
'있으려나 서점'을 읽으면서 작가의 기발함과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작가에 대한 소개글을 주의 깊게 한번 읽어보았다.
저자는 1973년생으로, 40살 이전까지는 회사원이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출간한 첫 그림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전 세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그림책을 지금까지 출간하고 있었다.
마흔 살에 데뷔한 신인 그림작가가 어떻게 베스트셀러 작가 되었을까? 그것도 작가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라는 궁금증이 났다.
마침 작가를 인터뷰한 기사를 찾을 수 있었는데, 서른 살부터 마흔 살까지, 그는 퇴근 후 낄낄거리며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살 수 없었다고 했다.
퇴근해서 밤에 나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일러스트를 그렸지요. 취미가 일이 된 셈이에요.
-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요시타케신스케 인터뷰 편에서
살면서 반경 5km를 벗어난 적 없다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상상력의 저력 뒤에는 걱정 많은 어린 시절의 자신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즐겁기 위해 그렸던 그림 취미가 있었다.
그 인터뷰 내용은 나에게 몇 가지 생각을 들게 했다.
어린 시절 머리가 깨질 듯 아플 때까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나를 보며, 또 그 생각 끝에 항상 일어나지도 않는 걱정을 끌어당기며 다시 그걸 또 걱정하는 나에게 주변 사람은 물론이고 나 역시
"넌 참 피곤하게 산다. 그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해대니?"라는 핀잔과 자책으로 나를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걱정 많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마치 내 몸에 뭐를 묻힌 양 싫고 또 떼어버리고 싶은 꼬리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9년 동안 전 세계 어린이들과 어른들에게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 작가의 원동력이 잡념과 걱정이었다니, 이 부분을 접하며 나는 그가 어린 시절 걱정 많은 그 아이를 인정해주고, 수용해주었음이 느껴졌다. 걱정 많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인정해주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했었을까...
생각해보면, 꽤 최근까지도 나 역시 걱정은 나의 원동력이었다. 두렵기 때문에 알아보고, 두렵기 때문에 더 살펴보게 됐었다. 그 친구 덕분에 지금의 나로 오게 되었는데, 난 그 친구를 인정하기 매우 싫었다.
'왜 이렇게 걱정이 많니, 쯧쯧 시간이 남아도는구나. 또 시작이네...'라는 질책으로 나를 얼마나 밀어붙이기만 했지, 그런 자책을 받는 나의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었다.
그런 내가 어쩌면 지금 나의 아이에게도 부드러움을 가장한 동일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지는 않은 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에이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라는 말과,
'걱정되는구나 그럴 수 있지, 요시타케 아저씨도 그랬대. 엄마도 그랬어. 전 세계 어딘가에 너와 같은 걱정을 하는 아이들이 있을지도 몰라. 그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니?'라는 말은 동일한 전환을 바라지만 줄 수 있는 메시지는 전혀 다른데...
마찬가지로, 나는 걱정 많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지금의 나에게 '걱정'이란 나의 친구를 당당히 인정하고 그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볼 수 있겠구나... 아니 도움을 청해야 하는구나.
'네가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니?'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그 내용들이 새롭기도 하고, 사실적이면서 환상이 있기 때문이야!'
언제가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브런치 작가가 된 건 있으려나 서점에 나왔던 것처럼 작가의 감수성 주사를 맞아서 그런 거 아닐까?
현실과 환상을 연결해서 새로움과 즐거움을 주고 있는 한 사람의 출발이
자신에 대한 위로와 인정으로부터 라는 것이 나에게 이토록 여운을 남긴다.
- 사실 요시타케 씨를 만나면 ‘어떻게 하면 재밌는 어른이 될 수 있는지’ 꼭 묻고 싶었답니다.
"가나가와현에 사는 가장 눈에 안 띄고 마음 약한 아이가 저였어요(웃음). 어릴 적부터 ‘뭘 해도 안될 거야'라고 자주 비탄에 빠졌어요. 그래서 항상 현재 상태의 반대를 가정해요. 어떻게 하면 즐거워질까, 덜 심심할까, 나쁜 생각에 지지 않도록 노력을 했어요. 그렇게 나를 즐겁게 하려는 연습이 그림책으로 나왔어요."
-오로지 당신 한 사람을 위한 그림이었나요?
"그렇습니다. 저는 여전히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내 그림은 나만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전 세계 독자들이 웃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도 나는 보통의 명랑한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지 않아요. 나의 어린 시절, 걱정 많은 어린이 요시타케를 재밌게 만들려고 그리죠. 걱정 많은 아이가 100명 중 10명은 있지 않겠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