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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d Enabler Feb 28. 2022

14. 내가 만들면 되지!

포켓몬 카드 열풍이 한창이었다.


지금도 열풍이려나? 작년 하반기에 단지를 걷다 보면, 카드 책자를 품에 안고 다니던 초등 저학년 남자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카드 구경을 하는 모양을 제법 쉽게 발견했다.

우리 집에도 초등 저학년이 있지만, 그 남아는 포켓몬 카드 정말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집에서 그다지 언급하는 일도 없어서 나 역시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몰랐다.


다만 아이가 '선생님이 학교에 가져오지 말랬는데, 어떤 애가 학교에 가져왔어'라는 말로 선생님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카드에 매료된 친구를 못마땅해하는 말을 한 두 번 했던 것이 다였다.

카드를 모으는 재미가 무엇인지 알기 전에, 정해진 규칙을 지키지 못하게 한 물건에 대해 생긴 선입견으로 아이는 그 놀이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 유행 지나고 있던 어느 날부터 아이는 학원 친구의 카드 사랑 얘기를 한창 듣고 와서나에게 몇 가지 말을 해주곤 했다.

'걔는 카드를 1600장 모았대. 그래서 너무 많서 엄청 두꺼운 책으로 만들었대'

'그중에 어떤 캐릭터가 있는데 그게 엄청 좋대'

'엄마, 오늘 걔가 이 카드 나 가지라고 줬어!' 그러면서 친구가 준 카드 2장을 들고 나에게 구경시켜주었다.


'1600장? 네가 잘못 들었겠지? 카드를 어떻게 1600장을 모을 수 있니?'

내가 어릴 때도 있었던, 그리고 나 역시 정말 재밌게 챙겨봤던 포켓몬...'역시 재밌는 것 세대를 뛰어넘나 보다'의 정도에서 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여느 날과 같이, 돌아온 아이는 나에게 '엄마 보여줄 게 있어요!' 하더니 자랑스레 종이 한 조각을 꺼냈다.

'오늘 그 애가 포켓몬 카드를 자랑하길래, 나도 했어'

'응? 무얼?'


아이가 보여준 종이에는 연필로 슥슥 그리고, 내키는 대로 설명해놓은 새로운 포켓몬이 그려져 있었다. 


아이가 첫번째로 만든 New 포켓몬 카드


'우와 정말 멋지다!, 어떻게 만들 생각을 했어?'

'아니~ 걔가 하도 자랑하길래, 그냥 내가 이런 카드 만들면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내가 카드 만들어버렸어,
그냥 만들면 되지 모!'


'쉬는 시간에 이거 만들었어, 내 것에는 약점하고, 포켓몬 카드에 없는 기능도 있어!'

'와! 아이디어 정말 좋다. 넣고 싶은 기능도 맘껏 넣고!, 세상에 하나뿐인 포켓몬 카드네~'


순간 나는 10년생 아이의 마음을 보다.

갖고도 싶지만, 여태껏 유지한 마음에 반해 괜스레 관심 두기도 싫은... 차마 사달라고 할 수 없는 그 마음...'


'우리  포켓몬 카드 재미로 몇 장 사보까?'라는 나의 제안에 아이의 얼굴이 환해지며,

'학교 앞 문구점 거기서 파는 것 같아!'

'그래, 그럼 내일 거기 가보자!'라고 하니,

'그냥 일단 구경하고, 괜찮으면 1장 살거야'라는 아이의 말이 참 귀엽게 들렸다.


다음날 문구점에 갔지만, 이제 그 카드가 들어오지 않는다 했다. 작은 문구점까지 오지도 않는다 해서 온라인 쇼핑몰을 찾아봤더니 그렇게 묶음으로 파는 줄 몰랐다.

'아이 친구가 1600장 샀다는 게 이런 말이었구나' 새삼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묶음까지는 필요 없다는 아이를 보며, 그럼 궁금한 면을 채워보라며 포켓몬 도감 책 1권을 사주었다.

뜻밖에 그 두꺼운 도감 책을 받은 아이는 굉장한 기쁨을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걸로 엄청 많이 만들 수 있겠어!  엄마 우리 같이 만들 자요!'....'헉 ㅎㅎ'


그 뒤로 우리는 조금 심심한 시간이면 함께 포켓몬 카드를 만들고 있다.

가족이 함께 만든 발전하는 카드


그리고 아울러 그 카드로 포켓몬 대결 놀이를 하고 있다.

난 아직도 HP가 뭔지를 모르면서 연격을 날리고, 포켓몬의 파워로 모습을 사라지게 한다.


물론 교우관계의 이유도 있겠지만, 초등 저학년 아이들의 카드 수집은 소유와 자랑이라는 속성을 갖는다.

그것을 창조로 전환시킨 아이의 기지가 기특하여, 나는 카드 만들기 만큼은 정말 열심히 동참해본다.


내가 어릴 적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내가 못 닿은 부분을 아쉬워하거나, 자책으로 이어지는 생각의 경로는 내게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그것의 시야를 바꾸어,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나 자신이 정하는 인식의 경로를 만들고 행동하는데 많은 노력이 들었다.


그런 인식의 전환을 비록 짧은 한 순간이긴 하지만, 스스로 한 아이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좀 전 저녁에 아이는 태권도 학원을 다녀와서 '흥! 화났어!'라고 하며, 친구 둘이 오늘 줄넘기 마스터 승급을 통과했다고 했다. '우리 아들 속상했구나. 그것은 화난 감정이 아니라 속상한 거야' 했더니,  화난 것이 맞다며 네 명이서 같이 승급하기로 해놓고 둘만 올라갔다며 화가 났다는 것이었다.


'음, 속상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친구들의 노력한 결과를 다르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아들이 그때 '포켓몬 카드가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되지!' 했던 그 마음이 참 좋았다고 생각해'


그때의 얘기를 하니 아이는 그 기분을 다시 느꼈는지, 웃으며 '엄마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한데... 나도 노력해서 마스터를 따라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네가 마스터를 따기 원하는 시점이 되면 네 스스로, 너의 방식으로 노력해서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때처럼'


그 대화 후 아이는 더 이상 그 화난 마음을 말과 표정에서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아이도, 나도 의도적인 의식의 전환을 연습해본다.


자극에 휘둘리지 않고, 반응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S(자극)-R(반응) 반사 회로를, S(자극)-T(생각)-R(반응) 생각 회로로 전환해야 합니다.

- 생각의 각도 중에서, 이민규 지음, 끌리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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