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ed Enabler Mar 20. 2022

17. 아이는 아이답게 나름의 방식으로 간다.

요즘 베드타임 책 읽어주기로 '푸른 사자 와니니'를 시작했다.


베드타임 책 읽기는 아이가 6살 때부터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그림책이었지만 9살 무렵부터는 조금은 두꺼운 문학이나 장편소설들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우리는 새로운 책을 읽을 때면, 본문을 펼치기에 앞서 책날개를 먼저 살펴보곤 한다. 어떤 작가인지, 어떤 책을 썼는지, 원래도 작가였는지 혹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인데 책을 쓰는 건지 작가의 이력에 호기심을 갖는다.

작가가 쓴 책 중에 어떤 책은 아이가 읽었던 책을 찾으면, 아이는 그 작가를 더 반가워했다.


또 우리는 맨 뒷장을 먼저 살펴보기도 한다. 이 책은 언제 지어졌을까, 몇 쇄를 인쇄했나... 인쇄수가 많으면 감탄과 함께 책의 내용을 더더욱 기대했다.


 '푸른 사자 와니니'의 날개를 펼쳤을 때, '와 엄청 유명한 책이구나'라며 인쇄수에 놀랐기도 했지만, 작가 소개에서 '어? 이 작가 이름 어디서 봤는데?'라고 하며 아이는 침대를 뛰쳐나가 이번 주 빌렸던 도서관 책 한 권을 가져왔다.


 우연히도 이번 주 도서관에서 빌려온 '내가 하고 싶은 일, 작가'라는 책이 바로 '이현 작가'의 책이었다. 이런 우연이... 아이는 반가움과 기대감으로 와니니를 맞이했다.


와니니가 마디바 할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만회하고 싶어 했으나 말라이카가 뜻밖에 죽게 됐을 때, 그로 인해 와니니가 무리에서 쫓겨나게 되는 대목에서 아이는 책을 읽는 나를 한번 올려다보며, 내 얼굴을 살폈다.


아마도 내가 슬픈 장면으로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너무도 멀쩡히 책을 읽고 있었는데, 아이의 손이 자꾸 눈을 비비적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슬퍼? 우는거야?'

라고 물으니, 아이는 '너무 슬퍼' 하더니
갑자기 오열을 했다.

'엉엉, 너무 속상해 말라이카 죽은 것도 불쌍하고, 와니니도 불쌍해. 어흑' 이게 웬일이랴...


나는 가끔 의도적으로 슬픈 책을 골라서 읽어주기도 했다. 슬픈 책을 읽고 아이도 그 정서가 느껴지는지, 세상에는 밝고 행복한 일도 있지만 때로는 슬프거나 화나는 일도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럴 때면 '이 책은 너무 슬프네, 이제 이런 책을 읽어주진 마세요'라며 눈물 없이 슬프다는 말을 하거나, 내가 먼저 울어, 한 두 방울 따라 울던 것이 전부였다.


 얼마 전에 읽었던 '밤티마을 큰돌이네'를 읽을 때엔 나는 아예 대놓고 불쌍하다며 울었고, 아이는 우는 나를 구경했다. 근데 그랬던 아이가 이렇게 오열을 할 줄이야...

난 눈물 한 방울 안 나오는데 말이다.


'어느 부분이 그렇게 슬펐어? 왜 울었어? 이 책이 그렇게 특별하게 슬펐어?'라는 말에 아이는

'예전에는 그냥 그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 읽었는데, 얼마 전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읽기를 배웠는데, 난 좀 특별하게 주인공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읽어보자고 생각했어. 그런 마음으로 읽었는데 너무 슬펐어.'라는 말을 했다.


'아... 그랬구나, 정말 좋은 방법이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은 지 최초 1년을 제외하면 거의 8년... 초기 몇 년은 유명하지만 비싸지 않은 숨은 책들로 읽는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었다.

스토리가 궁금하고, 책의 주인공들이 웃기기도 한지 책을 읽으면서 까르르까르르, 보고 또 보고, 정말 아이는 제 말대로 스토리가 궁금했나 보다.


난 책을 제공하거나, 가끔 읽어주기만 할 뿐 그 이상을 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력도 없었거니와, 흔히 말해 독서록 쓰게 되면 아이의 즐거움이 유지될까 싶기도 했다.


그저 그때그때 아이가 궁금해하는 발자취를 반 발자국 따라가며, 유난히 수학동화를 좀 더 많이 읽는 시기에는 다른 종류의 수학책을, 어떤 때는 위인전을, 어떤 때는 옛이야기 책을 비치해주었을 뿐이었다.


8살 무렵 아이는 한국사 책을 꽤 좋아했는데, 어느 날 책을 덮으며 '엄마! 정말 안타까워요. 신라가 8년만 버텼다면 천년을 유지했을 텐데!'라는 말을 했다.


'와... 정말 안타깝구나' 난 그 순간 그 말밖에 정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려, 난 그때 무슨 말을 했었어야 했는지 며칠을 두고 생각을 했었다.


'너는 어떤 부분이 안타까웠니?, 천년을 이루었으면 신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나는 왜 그런 질문을 하지 못했을까? 그때의 후회는 아이가 책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들의 점 잇기를 해줘야 한다는 책무를 느끼게 했다.


'그 책 어떤 점이 좋았어? 엄마한테 얘기 좀 해줄래?' 각 잡고 물을 때면 '책에 있는 만화만 봤는데요? 그걸 내가 왜 얘기해줘야 해요. 엄마도 보세요!' 할 때마다 내 욕심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실 그 책무감은 여전히 마음 한쪽에 '하고 있다'보단 해줘야 하는데'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아이는 가끔씩 가뭄에 콩 나듯이, 본인이 원하는 순간에 생각을 말하곤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들을 필요할 때 스스로, 또 외부의 가르침을 통해 조그마한 머릿속에서 이어가곤 한다.


 그것이 내 눈앞에 독서록이나 글쓰기 목록들의 성취물이 아닐지라도 제 나름의 방법을 찾아 슬며시 적용해보고,

즐거워하기도, 깔깔거리기도, 때가 되면 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슬퍼서 울기도 한다.

또 가끔은 나라면 어땠을까라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와니니는 와니니답게, 사자답게, 왕답게 초원을 달린다. 우리 모두 그랬으면 좋겠다. 저마다 저 다운 모습으로 신나게 달린다면, 지구의 웃음소리가 한결 커질 것이다.

나도 나답게 읽고, 쓰고 노래하고, 그리고 큰 소리로 웃어야겠다. 하하하.

- '푸른 사자 와니니' 작가의 말 중에서, 이현 지음


아이는 아이답게 책을 읽고, 제 방법으로 점 잇기를 하며, 저만의 속도로 생각을 기르고, 그 시간을 향유하고 있다.

나의 마음을 덜어주고 자신의 세계를 그렇게 쌓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16. 가자! 새로운 세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