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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d Enabler Mar 27. 2022

18. 엄마는 틈이 좁아!

며칠 전 태권도장에 다녀온 아이는

'기분 나빠, 나 포함해서 네 명이서 같이 줄넘기 마스터 따기로 했는데, 그중 두 명이 오늘 먼저 따버렸어!'


어떤 점이 기분 나쁘냐 했더니,

'같이 하기로 약속했잖아!, 그럼 지켜야지! 나 화났어!'

'음, 그건 화난 마음이 아니라 속상한 마음인 거야'


나는 아이가 감정에 맞는 표현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말했다.

'아니야! 난 화났어!'


 '네가 속상한 것은 이해해. 친구가 열심히 노력해서 마스터를 통과했는데, 너 때문에 할 줄 아는걸 일부러 틀릴 수는 없잖니, 만약 너라면 할 줄 아는데 못하는 친구를 위해 기다려줄 수 있니?'


하지만 아이는 좀체 화남을 숨기지 않았다.

 '친구가 노력한 결과를 얻어서 기분이 안 좋다면 나는 어떤 노력을 할까 고민하던지, 아님 쿨하게 인정해주던지 해야지 화낸다고 뭐가 달라지니?'

아마 난 아이의 아기 같은 마음이 좀 크기를 바랐나 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기분이 좀 전환된 뒤에, 사소한 얘기를 하던 중 아이는 말했다.

 '엄마는 틈이 좁아, 나를 이해 못 해'


'엥? 무슨 소리야? 철하다는 건가?'

'그건 주도면밀한 거고' 아니 이건 무슨 말인가...

좀 더 성숙한 생각을 하라고 한 소리에 아이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틈이 좁은 엄마라... 나름 넓은 엄마가 되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다음날, 지인과 이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는데,

'난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데, 얼마나 화나... 같이 넷이 약속해놓고 둘이 깬 것이. 아이의 마음은 그랬던 거지'라는 말을 들었다.

화나다 : 마음에 들지 않거나 기분이 나빠서 불쾌한 마음이 생기다.
속상하다 : 걱정스럽거나 언짢은 일로 마음이 편하지 않고 괴롭다.

(아홉 살 마음사전 중에서, 박성우 글/김효은 그림, 창비)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아이가 말한 화난다는 말이 상황에 어긋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아이에게 어떤 것을 바라고 있었을까.

약속이긴 했지만 그건 애초에 지켜지기는 쉽지 않은 약속이었다고, 그러니 그런 일은 좀 대범히 넘겼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고, 둘은 패스했는데 본인은 하지 못한 속상함이겠거니라고 그 마음을 으레 짐작했었나 보다.


아이가 말한 틈이 좁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지 않고, 들이밀 틈 없 것에 대한 서운함이었는지?

네 명이서 함께 하기로 해놓고, 과정과 이유가 어찌 됐던, 그게 옳던 그르던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혹은 좀 더 비약해보자면 그 약속을 깨버린 친구에 대한 화나는 마음을 몰라주고, '그게 어떻게 화남이야? 속상함이지!'라고 자신의 감정을 멋대로 재 정의한 엄마에게서 아이는 갑갑함을 느꼈나 보다.


생각이 줄을 잇다 보니, 갑자기 이미묘한 마음의 갭이 쌓여서 어느 순간, 언젠가 아이와 나 사이에 큰 벌어짐들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아이고,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니...




얼마 전 매일경제에 매경춘추 사설로, 카이스트 윤여선 경영대학 학장님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사설은 '리더와 부모의 자질'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어린 시절 유난히 예민하고 내성적이었던 탓에 학창 시절 엄청난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높았고, 집에 와서 혼자 누워 시간을 보내야 긴장감이 낮추어져 이후 생활이 가능했었는데, 그 당시엔 어머니로부터 게으르다는 질책을 받으며, 자신의 상황을 이해받지 못했었다는 내용이 일부 담겨있었다.


그리고, 모 프로그램을 통해 비슷한 상황이었던 아이 전문가로부터 '게으른 것이 아니라 예민하고 긴장감 높은 아이가 집에 오면 에너지 회복을 위한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는 조언을 얻는 것을 보고,

 50년 만에 학장님의 억울함은 사라지고 커다란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는 이후 이야기가 있었다.


진정한 경청에 대해 쓴 그 기사를 보며, 학장이 되신 후에도 남아있었던 그 억울함이 어쩌면 내 아이에게도 유사한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칭을 배울 때, 코치는 Not-knowing에 대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배운다. 코칭받는 사람의 마음을 편견이나, 자신의 생각으로 짐작하는 게 아니라 나는 저 사람의 마음과 생각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라는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 마음을 아이에게도 유지한다는 것이 부모이기에 더 어렵다. 여기에는 아이에 대한 나의 기대가 다분히 묻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산다.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아간다. 아이에 대한 나의 기대는 그저 나의 기대일 뿐이다.


나의 기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고,

그 아이의 생각이나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닌데...

그게 그 아이가 느꼈던 마음인데...

이런 생각을 하니 '엄마는 틈이 좁아'라는 10살짜리의 마음에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마도 아홉 살 마음 사전은 내가 읽어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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