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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하 Mar 20. 2017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새벽을 깨우며

해장국 기행(경상도 ①)-울산 먹으면좋으리순대국밥1번지 

구원 복수口腹寃讐 즉,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있습니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포도청 드나드는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못된 짓이라도 해서 호구지책을 면하려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고 어떠한 일이든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정확할 겁니다.


호구지책까지는 아니지만 친구를 따라 강남 간다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의기투합(?)하여 밤샘 작업을 해야 하는 아르바이트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서울 사는 두 사람이 멀리 울산까지 말입니다. 다섯 시간을 달려 늦은 밤에 도착한 울산 현장, 한동안 손 놓았던 일이라서 감각이 무뎌지기는 했지만 새벽녘쯤 그래도 무사히 일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다만 밤을 새워야 하는 것은 역시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긴장이 풀린 탓이었을까요? 갑자기 허기가 밀려옵니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거리를 두리번거리던 중 불 켜진 돼지국밥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렇지, 경상도 지역에서는 돼지국밥이지. 주저 없이 불 켜진 가게 안으로 들어갑니다.

돼지국밥은 6.25 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내려온 피난민들이 부족한 먹거리를 대용하기 위해 미군부대에서 나온 돼지뼈를 고아서 그 국물에 편육이나 머리 고기, 내장 등 돼지고기 부산물을 넣어 끓여먹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지역별로 끓이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지금은 부산, 대구, 밀양 등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 향토음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돼지국밥을 시켰습니다. 잠시 후 뚝배기에 팔팔 끓는 돼지국밥이 나옵니다. 국물이 뽀얀 걸 보니 돼지뼈를 우려낸 부산식의 국밥으로 보입니다. 국물 한수저를 떠서 맛을 봅니다. 이 맛입니다. 돼지국밥다운 본연의 국물 맛, 이는 육수를 잘 우려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음식이든 기본은 쓰임새에 따른 식재료 본연의 맛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간을 하고 양념을 넣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지요.

부추와 청양고추, 그리고 양념장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니 국물이 칼칼해지며 한결 개운해집니다. 밥그릇에 밥이 절반쯤 남았을 때 남은 밥을 국물에 맙니다. 국밥은 뭐니 뭐니 해도 만 밥에 깍두기 한 점씩 얹어먹어야 제맛입니다. 허겁지겁 한 그릇을 비워냅니다. 밖에는 아직도 어둠이 그대로입니다.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빈 속을 채우고 나니 살얼음 박힌 것처럼 온몸에 들었던 한기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다시 서울로 향합니다. 시내를 가로질러 울산을 벗어나는 길가에 드문드문 불 켜진 간판들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돼지국밥집들입니다. 아침식사를 거르고 일 나가는 서민들의 주린 속을 든든하게 채워주려 이른 시간에 가게문을 열어놓고 있을 겁니다.


돼지국밥은 순댓국의 다른 말입니다. 끓이는 방식이나 들어가는 재료가 지역별, 가게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큰 틀에서 보면 돼지국밥이나 순대국밥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다만, 돼지국밥에는 순대국밥에 들어가는 순대가 들어가지 않을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순대는 당면이나 찹쌀을 섞어 만들거나 숙주, 배추, 두부, 선지 등을 갈아서 양념과 버무려 만든 속을 돼지 창자에 채워 넣은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는 순대가 들어가지 않고 돼지국밥처럼 돼지 부산물로만 끓여 내놓는 곳들도 더러 있는데, 돼지국밥이라 부르지 않고 순댓국이라고 부릅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돼지국밥과 순대국밥의 명칭이 확연합니다. 차이는 역시 순대에 속을 채운 순대가 들어가냐 안 들어가냐입니다.

하지만 경상도 지역에 오면 순댓국보다는 '돼지국밥 주세요'가 더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미묘하지만 분명 순댓국과는 확연한 맛 차이가 납니다.

기분 탓일까요? 어떠한 이유로든 경상도 지역을 내려오게 되면 앞으로도 나는 주저 없이 돼지국밥집을 다시 찾을 겁니다. 그리고 다음엔 반주도 한잔 곁들여 볼 작정입니다. 그 자리에 맞은편에 앉아 배시시 웃으며 술잔 채워줄 친구 한 명쯤 있어준다면 더 금상첨화겠지요?


서울 오는 차 안에서 곰곰이 생각합니다. 때로는 국밥 한 그릇이 얼어붙은 생을 깨워주는구나, 그리고 그 국밥 한 그릇이 사람 마음마저 안온하게 해주는 구나라는 생각을 요. 아무래도 속이 든든해졌으니 드는 생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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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이름도 특이한 먹으면 좋으리 순대국밥 1번지(052.269.0977)는 울산 태화강변 삼산동에 있다. 24시간 영업을 하며 돼지국밥 외에 순대국밥 그리고 식용 곤충인 밀웜 등을 넣어 만든 고소애 순대는 이 집만의 독특한 메뉴이다. 설렁탕집과 순댓국집은 깍두기가 좋아야 하는데, 이 집 깍두기 역시 시원하고 아삭하여 국밥과 조화를 잘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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