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기행(전라도③-전북 진안읍 제일식당)
장이 열리는 날이면 가장 먼저 장터를 여는 곳은 국밥집 불빛입니다. 불 켜진 국밥집에서는 재료를 손질하는 손길이 부산하고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는 수증기가 굴뚝 연기처럼 피어납니다. 이렇듯 장터 부근 국밥집들은 새벽닭이 회 치기도 전에 서둘러 가게 문을 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합니다.
국밥집이 이렇듯 부지런 떠는 데는 장사도 장사지만 새벽부터 잠 설쳐대며 먼 길 달려올 장꾼들 허기를 채워주기 위한 배려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난전에서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손님과 씨름해야 하는 장꾼들은 속이 든든하지 못하면 하루를 버텨내는데 애를 먹게 됩니다. 그들에게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은 하루를 지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과도 같은 것이기도 했지요. 이러한 국밥집은 아직도 장이 서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점점 사라져 가는 장터로 인해 지금은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곳들도 장이 들어서는 날에만 문을 여는 등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니 안따까울 따름입니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전반적으로 노령 사회 진입이 가속되고 있는 가운데 농촌지역, 즉 시골 마을 노령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평균 연령대가 70대라고 하니 몇 년내에는 존립 문제를 걱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더욱이 인구마저 줄어들고 있으니 그 심각성은 생각보다 큽니다.
예전에는 작은 면단위 마을에서도 열리던 5일장이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5일장은 시골에서 구하기 힘든 생필품등을 장꾼들이 가지고 와서 팔고 산지에서 나는 농산물등은 수매하여 도회지로 내보내는 물물교환의 장이었는데, 인구가 감소하고 노령화가 되면서 팔려는 사람도 사려는 사람도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장터 기능이 약화되다 보니 자연스레 장날이 없어지게 되고 덩달아 장터에 있던 국밥집들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마이산으로 널리 알려진 진안은 고지대에 있는 산골입니다. 평균 고도 300여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이고 천 여 미터가 넘는 높은 산들이 사방으로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전형적인 산골입니다. 그래서 한 여름에도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기까지 한 곳이 진안지역입니다. 진안에서는 매월 끝자리 4일과 9일에 공설시장을 비롯한 읍내 곳곳에서 장이 섭니다. 장날이면 산골마을 곳곳에서 보자기 들고 봇짐 지고 읍내로 나서는 모습을 아직도 만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 가운데 한곳입니다.
이곳에도 50여 년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장터 국밥집이 있습니다. 새로 지어진 상설시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지만 버스터미널과 나란히 있어 장터를 찾는 사람들이 이 집 먼저 들러 따뜻한 곡기를 채우는 풍경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이 집 주 메뉴는 순댓국입니다. 순댓국에 쓰이는 순대는 다른 곳과는 달리 돼지 선지(피)로 만든 피순대가 들어갑니다. 분식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당면 순대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비주얼 또한 달라 음식 가림이 심한 사람들은 그 모습만 보고도 꺼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리해서라도 한입 넣고 곱씹다 보면 그 고소한 맛에 이내 선입견은 사라지게 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선 이렇듯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순댓국 외에 돼지머리 국밥도 이 집에서 손님들이 즐겨 찾는 메뉴입니다. 이 곳 국밥의 특징은 순대국밥이나 돼지머리 국밥이나 국물이 담백하며 돼지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이 집만의 비법이 분명합니다. 정성스레 내놓는 음식과 한결같은 맛에 이끌려 찾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50여 년의 세월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그 내공을 엿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뒤로하고 새벽길을 달려 국밥집을 찾았습니다. 부지런한 사람들 몇 이서 벌써 순댓국에 대포잔 기울이고 있고, 주방에서는 고기 다듬는 손길이 분주합니다. 국물 한수저로 간밤의 숙취를 풀어냅니다. 돼지뼈로 우려낸 우윳빛 뽀얀 국물은 숙취해소뿐만 아니라 곡기를 채우는데도 안성맞춤입니다. 콜라겐과 단백질 등 영양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건강에도 이롭습니다.
순댓국밥집은 전국적으로 성업 중입니다. 작은 마을에 있는 유일한 식당을 보면 백반집 아니면 순댓국을 파는 집입니다. 그마만큼 순댓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먹는 대표적 음식입니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다 보니 지역적 특성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와 육수 내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맛 또한 다릅니다. 그 맛이 어떤 맛이냐고 묻는다면 곤란합니다.
장금이가 홍시맛이 나서 홍시라고 하는데 홍시맛이 어떤 맛이냐고 물으시면 곤란하다는 대사와 비슷합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느 식당이든 그 집만의 맛이 있습니다. 그 맛에 이끌려 자주 가서 먹다 보면 혀끝은 그 맛을 기억하게 됩니다. 한수저를 떠먹고 ‘그래, 이 맛이야’ 하면서도 어떤 맛이야 라고 묻는 말에 대답하기가 곤란한 이유입니다. 바로 그 맛이기 때문입니다.
진안 제일식당 순댓국도 이 집만의 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들를 때마다 습관처럼 국물 한수저로 맛을 확인합니다. 혀끝에서 익숙하고 여전한 맛이 느껴지면 그제야 식사를 시작합니다. 거기에 한 가지가 더 얹어집니다. 추억입니다. 노포 식당들은 동네 어귀 커다란 느티나무와 같습니다. 느티나무 아래에 어린 시절 추억이 켜켜이 저장되어 있듯 노포 식당에도 그 집을 처음 들렀던 날부터 지금까지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6~7천 원짜리 순댓국 한 그릇 먹으면서 나는 오랜 추억을 끄집어내어 회상을 합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껏 잘 유지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 오랫동안 있어주기를 욕심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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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제일식당(063.433.2246)은 읍내 버스터미널과 나란히 있다. 이른 아침 식당에 들르면 주방에서 아주머니들이 쉴 새 없이 삶은 고기를 썰어내는 모습이 정겹다. 전국 인삼 생산량의 15%를 차지하는 인삼의 고장 진안에는 마이산을 비롯하여 용담댐, 운일암반일암 등 자연 경관지가 많다. 또한 임금님께 진상했다는 애저탕을 비롯해 흑돼지요리 등 먹거리 또한 풍부하다. 여기에 오래된 국밥집의 피순대국 또한 진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임을 기억해 둘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