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나니까
흐린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날씨를 많이 타는 기분 탓에 흐린 날이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축 처진다. 비가 오는 것도 해가 쨍한것도 아닌 이 어중간한 날씨에 이쁜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다. 흐린 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좀 더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날이 흐린 날은, 도시락을 싸들고 소풍을 가는 기분 좋은 상상도 들지 않고, 빗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듣거나 글을 쓰는 기쁨도 느낄 수 없다. 해를 맞으며 걸을 수도, 우산 아래서 하염없이 빗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 이도저도 아닌 흐린 날씨를 좋아하지 않는건, 어쩌면 나랑 닮은 구석이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외면하고 싶은 모호하고 이중적인 조금 낯선 나랑. 저기 구석에 자꾸 밀어두지만 꾸역꾸역 존재를 알리는 나의 모난 구석.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지만 내 행복을 위해 이기적이거나, 기분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거나, 무덤덤하면서도 별 것 아닌일에 상처받기도 한다. 강하고 싶다가도 한 없이 약해지고 싶기도 하고 당신의 힘이 되어주고 싶다가도 당신이 힘이 되어줬으면 싶기도 한다. 요행은 바라면 안된다면서도 요행을 간절히 바라고도 있고 선을 행하면서 악을 행하기도 한다. 하나같이 이쁜 구석 없이 이중적이다. 이 어중간한 날씨와 같이.
내가 외면하고 싶어서인지 조금 낯선 나의 모습들을, 이제는 조금씩 받아들이려고 하는 중이다. 참 생명력이 강한 놈이라, 구석으로 몰아낼수록 점점 커서 올라온다. 이럴바에 그냥 받아들이려 한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리액턴스 효과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청개구리 심리. 내 모난 구석이 청개구리라 그냥 받아들여 준다. 청개구리 라고 하니까 조금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떼 쓰는 어린아이의 모습과 비슷하니, 잘 보듬어 주고 귀여워해주려 한다.
어이구 그랬어?
나 참 귀엽지 않은가.
세상엔 다중인격자가 많다고 생각한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이들이 슬픔을 숨기며 살아내는 것 처럼, 숨기고 있는 모난 구석들도 많을거라 생각한다.
그런 모난 구석들 때문에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결국 나는 나니까. 전부 사랑해줬으면 한다.
일단, 귀여워해보는 것 부터 시작해보는게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