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느 날
20도 안팎의 온도와 흩뿌려진 구름이 장식한 파란 하늘은 좋지 않을 수 없다.
해질녘 점 찍어둔 가게로 간다. 이곳을 점 찍은 이유는 리뷰가 별로 없어서 였다. 아마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완벽한 사람보다 빈틈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 처럼, 이미 인기가 좋은 곳들 보다 자세히 보아야 이쁜 그런 곳들이 더 좋다. 이곳은 그런 곳 이었다.
저무는 해는 바다를 품고, 바다는 보답하듯 보석처럼 반짝인다.
열테이블이 채 되지 않는 작은 가게에는 한테이블의 손님들만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땅콩라떼를 주문하고 조금 허기진 배에 크림파스타를 추가 주문한다. 열어 둔 큰 창 앞에 자리잡아 가게를 둘러 본다. 가장 안쪽에는 긴 주방이 있고 주방의 긴 창으로 제주 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마찬가지로 제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큰 창 밖에는 테라스가 있고 한 테이블의 손님들은 그 곳에 앉아 있었다. 큰 창을 마주보고 벽면에는 빔에서 쏘아진 어바웃타임이 소리 없이 나오고 있었고 잘 선곡된 힙합스러운 곡들이 빈 공간들을 채우고 있었다.
가게를 둘러보며 책을 읽으며 기다리기 잠시, 주문한 메뉴들이 나온다.
어울릴까 싶었던 파스타와 라떼는 퍽 잘 어울렸다.
라떼에서 살짝 맡아지는 커피 탄 향이 좋다. 매콤한 파스타에 혀가 기분 좋게 알싸해지는 것도 좋다. 소리 없이 보는 어바웃타임도 좋다. 잘 선곡된 노래들이 좋다. 테라스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도 노래와 은근하게 어울려 좋다. 주방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쨍쨍 식기 부딪히는 소리 또한 좋다. 저무는 해와 흩뿌려진 구름의 조화도 좋고 저무는 해에 이리저리 반짝이는 바다도 좋다. 그 위를 비행기가 유유히 지나갈 땐, 황홀하다.
오늘이 이리도 아름답다. 이리도 아름다운 오늘은 축복이다. 난 이리도 아름다운 축복 속을 살고 있다.
이리도 아름다운 축복을 살아 간다는 건, 어쩌면 사는 것 자체가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축복이 나를 품었으니, 난 보답하듯 반짝여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