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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준혁 Dec 03. 2021

인생에 가장 만족스러운 백수

퇴사를 했다.

꽤 잘 운영되고 있던, 적어도 10년은 건재하며 든든한 돈벌이가 되어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여행사업이 코로나라는 불가항력에 무너져 잠정 백수가 되었다.

불가항력 백수를 버티지 못해서 였을까. 얼마 쉬지도 않고 바로 일을 찾았다. 금방 끝날거야 하고 잠깐 돈이나 벌 요량으로 다닌 공장일 이었는데, 만만찮은 불가항력인지 끝이 안보여 장장 1년을 다녔다. '상황이 좋아질때까지만, 다시 여행이 일상이 될때 까지만' 하며 꾸역꾸역 버텨냈지만, 1년간의 교대근무는 몸과 마음을 전부 지치게 했고 결국 '까지만'도 버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


주변 친구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다니던 직장을 위태 없이 잘 다니고 있고, 심지어 좋은 직장에 새로 취직하기도 한다. '퇴사하고 좀 쉬어야지' '뭣보다 건강이 우선이야 건강 좀 챙겨야지' 하며 나름의 합리적인 퇴사를 이뤄냈지만, 막상 지금보니 모두가 '예'라고 할때 혼자만 '아니오' 하고 있는 기분이다.

썩 호기롭게 일과 작별을 한지 고작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처음의 호기로움은 점차 위기의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래도 괜찮은걸까' '당장 일을 알아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든다.


그럼에도 아직은 백수인채로 잘 지내고 있다. 퇴사의 '나름'합리적 이유 였던 건강을 잘 챙기면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있다. 확실히 건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고, 더불어 정신도 온전해 지고 있는 느낌이다. 일에만 집중되어있던 평면적인 정신은 취미나 배움에 눈을 돌리면서 조금씩 입체적으로 되어가는 것 같다. 백수이니 싸게 배울 수 있는 강의들을 알아보고 있고, 생각보다 배우고 싶은 것들,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불가항력에 꺼져가던 열정에 작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내가 과연 퇴사를 외치지 않았으면, 이 작은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이 배움의 기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말한다. "지식과 배움에 시간을 쏟는 한가한 노년보다 인생에서 더 만족스러운 것은 없다." 이 멋진 고대 지식인의 말을 따르자면, 지식과 배움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백수인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때가 아닌가. 백수는 빈둥거리며 놀고 먹는 사람일 수 있지만(白手), 깨끗하고 맑은 물(白水)일 수 도 있다. 어느 색이든 되어 어디로든 흘러갈 수 있는.


아직 주변 상황이나 눈치도 많이 보고 위기의식에 간헐적으로 휘청이지만, 이 정도 휘청임은 해롭지 않다. 난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배움에 시간을 쏟는, 인생의 가장 만족스러운 때를 보낼 건강한 백수다. 휘파람 불며 휘청이는, 목적지 없는 유쾌한 모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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