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안녕

by 레인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다. 내가 항상 중얼거리는 생각이다. 시작도, 과정도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건 없지만,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맺음이 아닐까.
벌써 사랑의 맺음 후 3년이 넘게 흘렀다. 정확하지 않은 건 상대가 이혼을 말한 시점과 진짜 안녕을 한 시점이 반년 가까이 차이가 나므로. 흐른 시간만큼 과정에서 있었던 나쁜 감정들은 희석된 지 오래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이혼의 명확한 이유를 모른다는 것과 원했던 아름다운 마무리가 아니었다는 것. 전자는 원망스럽지만, 상대의 성향이겠거니 넘길 수 있다. 문제는 아무리 복기해 봐도 우연히 마주칠 때 인사할 수 있는 그런 좋은 관계로 맺기 위한 이별의 태도가 상대에게 부족했다.
얼마 전 아주 뜬금없이 그 사람에게 dm이 왔다. 많이 놀랐지만, 아주 조심스러워 보였고, 진심이 느껴지는 문장들이었다. 오로지 사과를 위한 연락이라고. 많이 고마웠고, 또 많이 미안했다고. 당시 함께 있던 지인들, 내 가족 모두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3년이 지난 이제야 상대에게 사과하는 것은 어쩌면 자기 마음속 묶인 매듭을 풀어 홀가분해지고 싶은 이기심에 기인한 행동일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대의 마음이 가벼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새벽까지 꽤 공들여 장문의 답장을 했다. 당신의 용기 덕분에 얼룩졌던 맺음이 조금은 환해진 것 같다고. 미친 소리 같겠지만, 지금보다 시간이 흐른 어느 햇살 좋은 날 맥주 한 잔 기울이며, 많이 미웠고, 많이 아팠고, 또 어떠한 소용돌이치는 삶을 살았는지 수다 떨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면 그것 또한 근사할 것 같다고. 나 역시 많이 미안했고, 또 많이 고마웠다고.
당신만을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대상에 대한 감정은 완전히 사라질 수 있지만, 평생 단 한 번도 그를 떠올리지 않는다는 건 존재할 수 없는 일. 하여 너무나도 힘든 일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나 나올법한 이상 같겠지만, 적어도 상대와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기억이 서로를 노려보는 차가운 눈빛이라거나, 모든 사랑의 감정이 싸늘히 식어버린 태도라거나 이런 장면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
나보다는 복잡하지 않은 사람이었던지라 아마도 기대하지 않았던 조금은 따뜻한 답장에 숙제 같았던 마음속 짐이 내려놓아지고, 남은 삶의 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으리라. 내 마음속 생채기는 세월에 조금씩 옅어지겠으나, 완전히 아물 수는 없을 테고. 여전히 아무렇지 않다거나 괜찮다는 표현을 쓸 수는 없는 상태로 지내고 있지만, 나 역시 덕분에 조금은 홀가분해졌으니 이제는 진짜 마침표를 찍고, 부러 뒤를 돌아보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주체적인 맺음을 선택한 그도, 비록 수동이었지만, 맺음을 당한 나도 모두 행복했으면 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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