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본질

by 레인
만남-사랑. 어쩌면 이 같은 경우는 만남이 아닌 충돌이라고 해야 할지도.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이 아니고서야 우리는 대부분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만남-호감-연애-감정의 발전-사랑. 아무런 의심도 없이 거쳐온 정형화된 단계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다. 어째서 사람들은 호감 단계에서 공식적인 연인 관계로 이어지는지. 서로에 관해 무얼 안다고 감정의 발전과 사랑 없이 연애라는 단어로 관계를 규정짓고 서로에 대해 책임을 요구하는 것인지 말이다.
먼저 대다수가 이에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이러한 생각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명시되지 않은 기간과 관계 정립의 모호함에서 오는 불확실성. 그에 파생되는 불안. 한데, 여러 잡념을 내려놓고, 사랑의 본질을 가만 들여다보면 외려 더 논리가 명확한 생각이지 않은가. 이 생각을 부정할 수 있는 논점들은 결국 사랑 그 자체 이외의 것들뿐이다.
다만, 해당 논지에는 한 가지 맹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만남 중에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주어지거나 혹은 제삼자에게 설렘을 느낀다면, 이는 바람인가 아닌가 하는. 우리가 호감을 느끼고 관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이유는 그놈의 오늘부터 1일, 그러니 우리 손도 잡아요. 따위의 것을 위함이 아니다. 호감을 느낀 상대와 공식적인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마음이 깊어지는지 알아가는 동안 타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서로에게 집중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니 이러한 일반적인 과정이 고리타분하다거나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물론 이는 논리에 관한 서술이지, 앞서 말한 의문을 품은 사람의 생각이 이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적지 않은 나이가 떠올랐고, 스스로는 흠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흠으로 다가갈 수 있는 과거도 떠올랐다. 그럼에도 연애와 결혼이 아닌, 삶 전체가 태동하는 듯한 진짜 사랑을 기다린다는 글을 끄적이곤 하는 내게 사랑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몇 번이고 다시 물어본다 하여도 끝내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만나러 가는 길에 뜬 무지개가 설렜고, 주고받던 문자를 감싸며 세상을 하얗게 덮던 창밖의 첫눈이 포근했다. 나에 대한 마음을 알 수 없고, 그에 대한 내 마음 역시 아직 모르지만, 사랑 그 자체를 갈구하는 내게 의미 없는 시간 낭비는 아닐 것 같다. 어쩌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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