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시작한, 아니 조금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사랑이란 분명, 해야지의 능동이 아닌 찾아오고 맞닥뜨리는 수동이므로 사랑이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몇 년 만에 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사실 무언가 새롭게 깨달았다기보단 깊은 상실 가운데 만남과 교제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고 살아가느라 잊었던 게 있다는 쪽이 가깝겠다.
나는 사랑만이 살게 하고, 웃게 하고, 숨 쉬게 하는, 그야말로 사랑이 곧 삶의 목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작가가 말했다.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바로 자신이라고. 사람은 결국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거라고. 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던 기억.
학창 시절 그 철없던 풋사랑의 맺음에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였다. 갑작스럽게 변경된 내신제도의 불합리함을 가장 큰 명목으로 앞세웠지만, 마음 깊은 곳의 진실은 첫사랑의 끝, 그 아득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자퇴를 결정했었고,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이별 뒤 슬픔에 1주일간 끼니를 거르거나, 3년 동안 끝난 사랑에 대한 애도의 시간을 가졌던 사람. 어쩌겠는가.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게 바라보더라도 그런 사람인 것을.
사실 여전히 두려움이 있다. 평생을 약속한 관계에서의 갑작스러운 맺음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고통이었고, 만약 다시 한번 상실의 아픔을 경험한다면 과연 내가 일어나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럼에도 나는 가족의 입을 빌리자면,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말이 통용되는 세상에서 사랑이 밥을 먹여주는 사람이므로, 언젠가는 다시 그 사랑이란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들 것이 자명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 한 길 속을 알 수 없는 마음, 관계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는 생각이 든다.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면 될 터이고, 그 모든 것을 다 떠나 굳어질 대로 굳어진 마음이 조금은 녹아 다시 설렘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만으로 그 한 사람에게 감사한 밤이다.
요즘 들어 다시 조금 밝아진 모습을 자각하며 문득 어머니께서 가끔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초등학생 시절, 반장이라는 놈이 복잡한 운동회에서 반 애들 통솔해 질서 유지할 생각은 안 하고, 친구들이랑 뛰어노느라 정신없어서 선생님 보기가 부끄러웠다는.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아주 밝은 아이였다.
[살전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